[화제의책]"사람 냄새가 나는 집을 짓자구요"

  • 입력 2000년 10월 27일 18시 47분


1990년대 건축물 비평서. 최근의 건축물을 본격 비평한 책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선 신선하다. 건축가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할 것은 비판했다는 점에선 저자의 과감함이 두드러진다. 대상 건물은 김원의 갤러리 빙, 김기웅의 성북구민회관, 승효상의 동숭동 문화공간, 장세양의 공간 신사옥(이상 서울), 최승원의 오화백 아틀리에(경기 안양) 등 30∼50대 건축가 19인의 작품 27개.

저자는 20세기 특히 1990년대 한국 건축의 주요 흐름을 추상성으로 본다. 그 단초로 예시한 것이 1990년초 세운 서울의 갤러리 빙과 성북구민회관. 저자는 이 두 건물을 비교 설명하면서 90년대 한국건축의 추상성 및 그 허와 실을 보여준다.

서울 하얏트호텔 앞의 갤러리 빙. 기하학적 모양의 외관은 온통 유리와 금속이다. 재료와 모양에서 모두 서구적 추상적이다. 예술적 추상이라는 면에서 보면 이전 시대의 추상 건축보다 한 단계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건물은 너무나 차가워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또한 건물에 최소한의 소통 구멍조차 차단시켜 놓았을 정도로 꽉 닫혀 있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이것이 건축가의 강한 자의식, 혹은 엘리트주의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성북구민회관은 추상적이되 갤러리 빙과는 다른 추상이다. 우선, 유리나 금속이 아니라 벽돌이라는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했다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원형 육면체 다각형과 같은 몇 개의 기하학적 형태들이 어울리면서 하나의 추상공간을 연출한다. 갤러리 빙이 서구적이라면 성북구민회관은 한국적 추상이다. 그 공간은 한옥이나 서울의 골목길을 연상시킨다. 갤러리 빙의 공간이 안으로 움츠려든다면 성북구민회관은 밖으로 열려 있다.

저자는 이처럼 두 건축물을 비교해서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준다. 저자와 함께 건축물의 안팎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자연스레 건축물을 읽어낼 수 있는 안목도 생긴다.

이 책의 일관된 시각은 인간중심주의다. 건축물이 아무리 추상적이라고 해도 거기엔 사람이 살아야 한다. 삶은 현실이다. 추상이 아니라 구상이다. 현실을 잘 못담아 낼 경우, 건축물의 추상은 망가진다.

저자는 극단적인 예로 쓰레기를 든다. 건물은 쓰레기에 의해 더러워진다. 건축가는 그렇게 되길 원하지 않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갤러리 빙은 쓰레기를 놓을만한 조그마한 틈도 없다. 저자는 이를 두고 추상의 결벽증이라고 비판한다.

이는 건축물이 건축물 자체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열려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저자가 건축물과 길 문 주변경치를 함께 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축물 안과 밖의 소통, 건축물과 인간의 조화, 추상과 구상의 평등, 이것이 한국 건축이 추구해야 할 점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임석재 지음/343쪽/2만5000원/북하우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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