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儀軌(의궤)

  • 입력 2000년 11월 2일 19시 02분


儀―법도 의 軌―법 궤 勳―공 훈 耕―밭갈 경 宴―잔치 연 謄―베낄 등

儀軌는 지금 말로 하면 儀典(의전)과 같은 뜻이다.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에는 일정한 儀式(의식)이 따르게 되는데 그 형식과 절차가 매우 복잡할 뿐만 아니라 내용도 번거로워 실행하기 위해서는 經費(경비) 또한 만만찮게 드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格式을 갖추어야 할 자리에서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소홀히 할 수도 없다. 특히 외국 頂上과의 만남과 같은 경우에는 국가의 위신까지 걸려 있어 더 없이 중요하다.

그것은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복잡한 것을 일일이 다 기억할 수도 없고 해서 후일을 위해 절차와 내용을 상세하게 적어둠으로써 참고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것을 儀軌라고 했다. 중국의 漢(한)나라 때부터 실시되었던 제도로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에 성행했다.

儀軌를 기록하거나 작성하게 되는 경우는 국가의 중요 儀式이 거행되었을 때로 대체로 王이나 世子의 嘉禮(가례·혼례)나 冊封(책봉), 國葬(국장), 陵墓(능묘)의 축조, 先王에 대한 追尊(추존), 實錄의 纂修(찬수), 功臣에 대한 錄勳(녹훈), 御眞(어진·임금의 초상화)의 圖寫(도사), 심지어는 왕의 親耕(친경·밭갈이), 進宴(진연·잔치) 등 다양했다. 특히 正祖 때에는 華城신도시의 건설과 국왕의 水原 行次에 대해서도 각기 장편의 儀軌가 작성되었다. 필요하면 그림까지 덧붙였다.

일단 행사가 있으면 이를 주관하는 임시 관청을 두게 되는데 都監(도감), 또는 實錄廳, 纂修廳이라고 했으며 행사가 끝나면 다시 儀軌廳을 설치하여 기록하게 된다. 嘉禮都監儀軌와 같이 사안에 따라 주관하는 관청의 이름을 앞에 붙이게 되는데 이 때문에 여러 기관의 儀軌가 있을 수 있다. 내용은 그 행사의 연원, 진행경과, 소요된 비용, 의식절차, 행사후의 처리 등을 소상하게 기록해 두었다.

기록에 앞서 날짜별로 행사의 진행상황을 일일이 기록하게 되는데 그것을 謄錄(등록)이라 했다. 儀軌 작성의 기초자료가 된다.

儀軌는 대체로 御覽用(어람용) 1부와 각 史庫 보관용 등 도합 2∼9부를 작성하게 되는데 御覽用은 임금이 보는 것인 만큼 만드는 재질과 양식이 달랐다. 표지는 비단을 사용하여 裝幀(장정)했다.

요즘 거론되고 있는 것은 御覽用을 포함, 1860년대 이전의 儀軌 중 강화도의 外奎章閣에서 보관하던 것으로 1866년 丙寅洋擾(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당한 도합 297책의 儀軌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e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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