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만의 종교이야기]'헤비메탈'의 묘한 마력

  • 입력 2000년 11월 2일 19시 02분


“귀를 찢는 기타 소리가 온 몸에 밀려든다. 점점 빨라지는 드럼의 리듬은 심장의 고동을 더욱 크게 한다. 리드 싱어의 몸부림은 그의 노래와 함께 나를 들어올리고 또 곤두박질치게 한다. 주위 사람들의 환호와 고함소리는 마치 내가 거대한 바다의 파도더미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내 몸은 반복적으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커다란 흐름에 내맡겨져 있다. 이 흐름에 저항할 생각은 전혀 할 수 없다. 나는 이전의 내 피부를 느낄 수 없다. 나를 가둬놓고 있던 나의 껍질은 무한하게 부풀어 올라 연주회장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 같다. 음악소리, 고함소리와 나는 더 이상 구분할 수 없다. 내가 그 소리속으로 빨려들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속에 그 소리를 가득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아 벗을 기회 줘◇

‘헤비 메탈’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양극적이다. 아주 좋아하든지 아주 싫어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한번 ‘헤비 메탈’의 마력에 빠지면 벗어나기 힘들다. 뱀이 허물을 벗듯이, 일상의 자아를 벗어던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헤비 메탈’은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금의 내가 해체되고 알 수 없는 혼돈속에 파묻히게 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일상의 자아를 뒤흔든다는 점에서 종교경험은 ‘헤비 메탈’ 음악과 닮았다. 종교경험의 특징중 하나는 자아의 좁은 울타리를 걷어내고 보다 더 큰 ‘무엇’을 맞이 하는 것이다. 그 ‘무엇’은 자아밖에 존재하는 초월적 타자일수도 있고 자아속에 숨겨져 있던 ‘진정한’ 자기일 수도 있다. 종교경험을 하게 되면, 안에 있는 것이든 밖에 있는 것이든 더 큰 ‘무엇’에 자아가 파묻히는 체험을 하게 된다. 여태까지 ‘너무 먼 당신’으로 여겨졌던 신의 품에 안겨 녹아드는 자신을 느낀다든지 탐욕으로 가리워졌던 ‘참된’ 자기와 하나되는 경험을 한다.

◇종교경험과 닮아◇

종교경험과 ‘헤비 메탈’ 음악은 모두 관습적인 일상으로부터 자아를 해방시킨다. 한편으로는 두렵고 다른 한편으로는 매혹적인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두려움에 얼어붙은 이들은 이 세계에 참여할 수 없기에 적어도 ‘다른’ 세계를 열어젖힐 수 있는 용기있는 자만이 여기에 들어올 수 있다. ‘헤비 메탈’과 종교경험의 초대에 응한 이들은 이 초월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약과 독은 동전의 앞뒷면인 것처럼, 초월의 세계는 엄청난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자칫하면 일상세계와의 끈이 끊어질 수 있다. ‘헤비 메탈’의 유명한 연주가나 광적인 팬들중에서 적지 않은 이가 현실감각을 상실하고 폐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이를 보여준다.

◇'초월의 세계' 만끽◇

반면에 종교경험을 하는 이들은 ‘초월의 바다’에서 익사하지 않고 다시 제대로 일상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앞서 갔다온 이들이 마련해놓은 오솔길을 오랜 지혜의 전승으로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석만(한국종교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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