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시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아도르노의 수업을 듣는 한 여학생이 알몸인 채 불쑥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도르노에게 “당신도 나처럼 실천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도르노는 당시 학생운동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비판이론의 핵심적 사상가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런 질타는 철학자들의 안일하고 관념적인 태도를 날카롭게 꼬집은 상징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학문이 상아탑 속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되며 현실적 실천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지나칠 정도로 관념적이며 추상적인 철학을 보며 철학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무용한 학문이 아니냐는 극단적인 물음까지 제기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런 회의를 한번도 품어보지 않은 철학자는 없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프랑스 철학자 알튀세르는 철학적 실천이란 다름 아닌 이론을 생산하는 활동 자체라는 독특한 답을 내렸다. 철학이 굳이 경제학이나 물리학 혹은 의학처럼 실제 기술에 응용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철학은 세계를 보는 눈(세계관)이므로 철학자는 자신의 이론이 가지고 올 사회적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한다. 예를 들면 관념론은 난해한 세계관인 반면에 유물론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러므로 관념론은 부르주아지의 철학이며 유물론은 노동자 계급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생각이 너무 소박하고 지나치게 도식적이라고 비난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소박한 도식적 사고가 실제로 철학적 실천의 전부로 받아들여진 적이 있다. 그 결과물들이 한 때 서점에 쏟아져 나온 쉽게 쓰여진 철학사 책, 혹은 철학 개론서들이다. 물론 난해하고 추상적인 개념이나 어려운 사상을 쉽고 명확하게 풀어쓴 것이 무의미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철학적 실천이라고 부르기에는 오히려 철학을 너무 협소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든다. 쉽게 쓰여진 철학 입문서들도 알고 보면 기존의 철학사 책이나 개론서를 평이한 용어나 일상적 사례를 풀어쓴 것에 불과했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보면 이 책은 기존의 글쓰기와는 달리 철학적 실천의 새로운 탈출구를 열어 보이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어려운 개념이나 사상을 단순히 숩게 풀어 쓴 데 그치지 않고 그런 생각들이 우리가 현실 속에서 부딪치는 일상 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부부 사이의 갈등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에게 홉스의 사상은 얼핏 무의미해 보일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그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철학적 실천의 가능성을 입증한다.
더 나아가 매리노프는 철학이 정신 분석학처럼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실천학이 될 수 있다고 강변한다. 1980년대 독일에서 시작된 ‘철학적 카운슬링’ 운동은 이미 서구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소개된다고 한다. 한 권의 책으로 이 운동을 평가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처세술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박 영 욱(철학박사·고려대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