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아빠 어렸을 적엔…" 소근소근 들려주는 농촌이야기

  • 입력 2000년 11월 3일 18시 45분


누구든 해거름녘이 되면 어릴적 친구 한 두 명쯤 기억난다. 그리고 내 아이를 보면서 저 아이도 나중에 누군가를 기억해 내겠지 싶은 생각이 든다.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 내 아이가 알아들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릴적 친구의 기억을 내 아이와 함께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까치 아파트’는 특히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아버지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다. 도시에서 바쁘게 자신을 찾을 겨를이 없는 내 아이와 함께, 방 바닥을 뒹굴면서, 아빠의 어린 시절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차있다.

이제 막 이성에 눈 떠가는 때의 가슴 설레임 (‘다리’ ‘비’), 나를 둘러싼 이웃들에게 조금씩 책임감을 느끼는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해가는 엄숙함 (‘솔개의 눈’ ‘학’ ‘제웅’), 마을 서로가 모두 다독거려 주는 공동체 사회에서 느껴지는 푸근함 (‘닭서리’ ‘각시방에 불켜라’ ‘도둑’) 들이 작가의 성격을 나타내는 듯한 차분하고 서두름이 없는 어투로 우리에게 가만 가만 다가온다. 특히 그 중에서 ‘닭서리’는 문체가 간결하면서도 묘사가 섬세해서, 서리한 닭을 삶아 건져 놓았을 때는 그 뜨거운 김이 읽는 이의 얼굴에 훅 끼쳐 땀 방울이 얼굴에 맺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데에는 전혀 어색함 없이 녹아든 리드미컬한 사투리의 재미도 큰 몫을 하였다.

읽는 재미를 더하는 데 그림의 역할도 크다. 이 책의 그림은 그림책에서처럼 글로 쓰여지지 않은 다른 이야기를 읽는 이가 알아챌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다. 특히 ‘닭서리’ 마지막 부분의 그림은 그 동화의 많은 뒷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너무 재미있다. 또 ‘비’의 배경그림은 색깔의 미묘한 변화로 주인공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어, 그린 이의 동화에 대한 애정이 잘 드러나 있다.

잘 쓴 동화를 읽으면 어른도 어린이도 공감을 한다. 어린이의 마음은 시대가 바뀌어도 모양만 바뀔 뿐, 그 기본은 변하지 않으며, 어른도 한 때는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작위적인 교훈은 주려는 동물 우화적인 몇몇 작품은 아쉬웠다.

김 혜 원(주부·36·서울 강남구 수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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