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상권 어제와 오늘]재단사 이재남씨가 본 명동

  • 입력 2000년 11월 9일 18시 31분


서울 중구 명동 일대에서 22년간 맞춤양복점 재단사로 일해온 이재남씨(45)는 ‘명동의 통사(通史)’를 말해주는 이다. 70년대 최고의 명소였다는 브라운양복점을 시작으로 지금은 세종호텔 뒤편에 샤인양복점 대표로 계속 명동을 지켜봐왔다.

“70년대야 청바지 통기타 문화의 전당이었죠. 80년대부터 명동에 통기타 문화가 사라진다는 말이 돌긴 했어요. 하지만 그때야 강남상권이 없었으니까 셔터만 열면 전국에서 온 손님들이 몰려들었죠.”

시대가 변해 200여개였던 맞춤집들이 지금은 10개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2∼3년전보다는 요즘이 꽤 나아졌다고 한다.

“아무래도 명동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으니까요. 또 맞춤점에서 외제와 똑같은 디자인으로 해주니까 오다가다 들른 신세대들에게도 호응이 큰 편입니다.”

이씨는 90년대 초중반 명동상권이 변화의 타이밍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쉽다.

어떤 고객을 겨냥할 것인지 마케팅 타깃을 맞히지 못해 호황임에도 불구하고 명동은 성장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제때 ‘구조조정’을 못한 것이 90년대 더 크게 도약하지 못한 이유였다고 이씨는 회고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10대는 중저가 의류매장과 노점으로 20, 30대 샐러리맨들은 국산브랜드숍으로 차별되는 추세.

또 일본인 관광객들은 안경점 마사지집과 한식집, 중년의 주부들은 일식집 미용실 등으로 몰리는 등 명동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있어 명동상권 전체가 살아나고 있다고 이씨는 반가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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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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