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피 골드버그(55년), 게리 마샬(34년) 감독 출생
검은 피부와 못생긴 외모로 선남선녀들이 판치는 할리우드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배우 우피 골드버그. 그녀는 55년 11월13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덜 생긴 외모로 할리우드를 주름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웃기는 재능 덕분. 한때 마약에 찌들어 살았을 만큼 방탕한 히피 생활을 즐겼으나, 극단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마약을 완전히 끊었다. 풋내기 시절 미용사와 장의사 일을 겸하며 생활고를 해결했던 그녀는, 코믹 연기의 대가라는 입소문이 나면서부터 안정된 스타을 길을 걸었다. 86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칼라퍼플>로 영화에 데뷔, <사랑과 영혼> <시스터 액트> 시리즈, <보이즈 온 더 사이드> <에드> 등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빌리 크리스털과 번갈아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자로 활약했다.
11월13일은 '뉴요커의 날'일까. 우피 골드버그보다 20여 년 먼저 태어난 뉴요커 중엔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 게리 마샬도 포함되어 있다. 페니 마샬 감독과 남매지간인 그는 60년대 영화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 배우 등으로 활동했으나, 80년대부터 주 업종을 감독으로 바꿔 이름을 날렸다. 감독이 된 뒤 한동안 이렇다할 작품을 내놓지 못했던 그는 <톰 행크스의 광고 대전략> <환상의 커플> 등을 연출하며 서서히 이름을 알렸고, 90년 <귀여운 여인>으로 흥행 감독이 됐다. 이후 그는 <프랭키와 자니> <사랑하고 싶은 그녀> <런어웨이 브라이드> 등을 연출했으며, 간간이 <그들만의 리그> <25살의 키스> 등에 배우로도 출연했다.
비토리오 데 시카(74년) 감독 사망
로베르토 롯셀리니, 루치노 비스콘티와 함께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이끌었던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 그는 74년 11월13일, <자전거 도둑> <해바라기> 등의 수많은 걸작을 남긴 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폐의 포낭 제거에 따른 심폐기능 장애. 죽기 직전인 74년에도 그는 앤디 워홀 감독의 <드라큘라>에 배우로 출연하는 등 영화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다.
1930년대까지 배우로 활동했던 그는 처음 멜로 드라마 감독으로 데뷔했다가 훗날 네오리얼리즘 감독 대열에 합류한 인물. 57년 <무기여 잘있거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무려 4차례나 수상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 & 레베카 밀러(96년) 결혼
두 사람의 결혼은 모든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진 못했다. 결혼 이전,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사생활이 꽤나 복잡했기 때문.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와 한때 동거했던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그녀와 헤어진 후 극작가 아서 밀러의 딸이자 영화 제작자인 레베카 밀러와 사랑에 빠졌다. 거기까진 흔한 사랑 이야기와 별다를 바가 없으나, 문제는 헤어진 이자벨 아자니 몸에 다니엘의 아이가 잉태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안 후에도 다니엘과 레베카는 결혼을 강행했으며, 이자벨은 결국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었다. 어렵게 결혼에 골인한 다니엘과 레베카는 현재까지 무난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미셸 파이퍼 & 데이비드 E. 켈리(93년) 결혼
미셸 파이어의 첫 번째 남편은 <굿바이 마이 프렌드>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피터 호튼 감독이었다. 미셸이 TV 드라마 배우로 활약하던 1981년 만나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은 불화에 시달리던 끝에 1988년 결국 이혼했다.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이유는 미셸이 <그리스 2> 이후 스타배우 대열에 합류했던 데 반해, 피터 호튼 감독의 이력은 형편 없었기 때문. 이후 일과 아이들밖에 모르고 살아가던 미셸을 사로잡은 인물은 바로 프로듀서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한 데이비드 E. 켈리다. 93년 양녀 클라우디아 로즈를 입양했던 그녀는 같은 해 11월13일 데이비드 E. 켈리와 결혼, 이듬해 그와의 사이에서 아들 존 헨리를 낳았다.
■11월16일 목요일
마이클 치미노(43년) 감독 출생
그의 생년월일은 사실 모호하다. '인터넷 무비 데이터 베이스'에 따르면 43년 11월16일이 분명하지만, 몇몇 잡지들은 그의 생년월일을 39년 2월3일로 명기하고 있다.
어쨌든 뉴욕에서 롱아일랜드 음반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타고난 예술가다. 예일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연극제작을 공부했고, 한때 발레수업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끼'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불운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디어 헌터>로 아카데미 4개 부문 상을 휩쓸며 승승장구할 것처럼 보였던 그는, <천국의 문>으로 그 자신은 물론 이 영화의 제작사까지 파산지경에 몰아넣었다. 아마도 할리우드 역사상 한 편의 영화 때문에 스튜디오 자체가 문을 닫은 경우는 <천국의 문>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이처럼 한 편의 영화로 불명예를 떠안았던 그는 이후 <이어 오브 드라곤> <시실리안> <선체이서> 등의 재기작을 선보였으나,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는 <디어 헌터> 한 편에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모두 소비하고 만 것일까. 현재 그는 할리우드 바깥에서 영화를 만들며, 할리우드 복귀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11월17일 금요일
소피 마르소(66년), 롤랑 조페(45년) 감독, 대니 드 비토(44년), 마틴 스콜세지(42년) 감독, 록 허드슨(25년) 출생
11월17일은 전세계 유명 배우와 감독들이 앞다퉈 세상 밖으로 모습을 보인 날이다. 가장 먼저 17일을 자신의 생일로 기록한 인물은 <무기여 잘 있거라>로 유명한 할리우드 고전 배우 록 허드슨. <자이언트> <세컨드> 등의 역작을 남긴 그는 85년 10월2일 에이즈(AIDS)로 사망, 전 세계 팬들을 슬픔에 빠뜨렸다.
그가 태어난 지 17년 후, 뉴욕주 퀸즈에선 마틴 스콜세지라는 거물 감독이 태어났다. 우디 앨런과 더불어 뉴욕 출신 최고의 감독으로 기록된 그는 갱스터와 느와르, 스릴러 등을 아우르는 장르의 마법사다.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했으며, 편집기사로 데뷔, <분노의 주먹> <택시 드라이버> <좋은 친구들> <코메디의 왕> <순수의 시대> <카지노> 등의 영화를 연출했다.
스콜세지보다 2년 연하인 대니 드 비토는 1944년 11월17일 미국 뉴저니주 넵튠에서 태어났다.
150cm의 작은 키를 오히려 자신의 주무기로 활용한 연기파 배우 대니 드 비토. 이브 몽탕처럼 누이가 경영하는 미용실에서 미용사로 활동하다 배우로 데뷔한 그는, 연극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삶의 경로를 완전히 바꿨다. 이 연극을 스크린 버전으로 옮긴 동명 영화에 출연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 이후 그는 <애정의 조건> <장미의 전쟁> <트윈스> <쥬니어> <팀 버튼의 화성침공>
11월17일이 생일인 인물 중엔 할리우드 밖 스타들도 많다. 롤랑 조페와 소피 마르소가 대표적인 경우. <킬링 필드> <미션> <시티 오브 조이> 등의 영화를 연출한 롤랑 조페 감독은 1945년 이날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여배우 소피 마르소는 1966년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물론 자국의 스타로 머물지 않고 영역을 넓혀 지금은 전세계적인 감독 혹은 배우로 성장해 있다.
8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롤랑 조페 감독은 90년대 들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소피 마르소는 할리우드와 프랑스를 오가며 30대 중반이 넘은 지금까지 마르지 않는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대표작은 <라붐> 시리즈와 <유 콜 잇 러브>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브레이브 하트> <안나 카레리나> <007 언리미티드> 등. 최근작 <피델리티>를 들고 감독이자 남편인 안드레이 줄랍스키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11월19일 일요일
조디 포스터(62년), 멕 라이언(61년) 출생
11월19일은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를 두 명이나 배출한 날이다. 지성파 여배우의 대명사인 조디 포스터와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의 히로인 멕 라이언. '성숙한' 조디 포스터가 '귀여운' 멕 라이언보다 한참 언니일 것같지만, 사실은 멕 라이언이 조디 포스터보다 한 살 위 언니다. 그러나 연예계 데뷔는 조디 포스터가 훨씬 선배 격.
미국 코네티컷주 페어필드에서 태어난 멕 라이언은 81년 'Rich and Famous'로 데뷔, 89년 로브 라이너 감독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 스타덤에 올랐으며,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조디 포스터는 67년 TV 시트콤에 아역배우로 출연, <택시 드라이버> <피고인> 등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조디 포스터는 <택시 드라이버> 출연 이후, 그녀의 광적인 팬이 영화 속 내용을 흉내내 대통령을 저격하려던 사건이 발생해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을 만큼 황폐한 시간을 보냈다. 그후 새롭게 재기에 성공한 작품은 <피고인>.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그녀는 <양들의 침묵>으로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 미모와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임을 확고히 했다.
반면 멕 라이언은 폭넓은 인기에 비해 상복은 별로 없었던 편이다. 아카데미 회원들이 좋아하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주로 출연해 왔기 때문. 그녀는 섣부른 변신보단 귀엽고 상큼한 기존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마흔이 넘은 그녀에게 여전히 귀여운 이미지를 원한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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