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남대총' 주인은 누구?…국제학술대회서 논쟁 예상

  • 입력 2000년 11월 14일 18시 28분


1975년 발굴로 모습을 드러낸 지 25년. 5세기 전후에 축조되었고, 부부묘이며, 남분(南墳)이 남성의 무덤이고, 부인(夫人)이라 쓰여진 은제허리띠가 출토된 북분(北墳)은 여성의 묘이며, 남분이 북분보다 시대가 앞선다는 점 정도만 확인된 상태다.

이종선 서울시립박물관장(고고학)은 최근 저서 ‘고신라왕릉연구’에서 황남대총은 내물왕 부부의 무덤임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이관장은 4∼6세기 고분과 유물 비교 등을 통해 황남대총 남분을 5세기 극초에 조성된 왕릉이라고 보았다. 이 무렵 사망한 왕은 내물왕(402년 사망)이기에 남분은 내물왕릉이 틀림없다고 단정한다.

이럴 경우, 북분은 당연히 내물왕의 부인인 보반부인의 묘가 된다. 남분은 내물왕이 죽자 402년경 보반부인 주도로 만들었고 북분은 보반부인이 죽고 나서 아들 눌지왕이 즉위하던 417년경에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왕비릉인 북분에서 금관이 나오고 왕릉인 남분에선 그보다 떨어지는 금동관이 나온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관장은 내물왕이 미추왕의 사위 자격으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그 가문이 보반부인에 비해 서열이나 세력에서 떨어지므로 왕비의 무덤에만 금관을 묻을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같은 추론은 황남대총 주인공을 가리는 논란의 시작일 뿐이다.

내물왕릉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유물이 발견되지 않은 데다, 내물왕이 사위로 왕에 올랐다해도 왕의 무덤이 왕비의 무덤보다 격이 낮을 수 있는지에 관한 정교한 해명이 필요하다. 최병현 숭실대교수(고고학)는 “고고학적인 해석틀 자체도 왔다갔다 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왕릉급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특정 왕릉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황남대총은 한국 고고학사에 있어 최대 미스터리의 하나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