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은 당초 내년 3월부터 방송하는 SBS 새 미니시리즈 <파라다이스>(가제. 연출 이장수, 제작 김종학 프로덕션)의 주인공으로 내정됐으나 최근 촬영을 눈앞에 두고 전속 문제에 휘말렸다.
다른 곳이 아닌 SBS TV제작본부 드라마국에서 그의 출연에 제동을 건 것. 이병헌이 SBS 본사와 맺은 드라마 전속출연 계약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외주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드라마국 입장이다.
이병헌은 94년 SBS와 총 50회의 드라마 전속출연 계약을 맺었다. 지난 98년 군입대 전까지 27회 분에 출연해 현재 남아있는 계약회수는 23회 분. 군입대전 이병헌의 요청으로 50회 연장 계약을 맺은 것을 포함하면 73회 분이나 남아있다. 이는 평균 16부작인 미니시리즈 1편과 50회짜리 주말극 1편을 출연하고도 남는 횟수다.
SBS 드라마국은 "이병헌이 전속계약이 남아있는 본사 드라마는 기피하고 목돈을 받을 수 있는 외주 드라마에만 출연한다"며 그의 <파라다이스> 캐스팅을 막겠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병헌측의 입장은 다르다. 본사제작이냐, 외주제작이냐는 것은 방송사의 입장이고 자신은 SBS 전파를 타고 방송되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약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올해 드라마국과 맺은 합의서에서 내년 3∼4월에 방송하는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파라다이스>에 출연하는 것 역시 전속계약에 명시된 출연분을 채우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병헌과 SBS측이 맺은 합의서에는 ‘이병헌은 2001년 3, 4월 방송되는 드라마 스페셜 및 2001년 SBS가 지정하는 월 화 또는 주말연속극에 출연한다’고 돼있다. 문제는 합의서 작성 당시에는 내년 3월에 본사 드라마가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편성계획이 변경되면서 외주 드라마인 <파라다이스>가 들어온 것. SBS는 <파라다이스> 후속으로 방송될 본사 드라마에 출연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이병헌은 계약대로 하자며 맞서고 있다.
이번처럼 자사 채널을 통해 방송되는 외주 드라마의 출연자를 본사 드라마국이 출연을 저지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 SBS 드라마국측은 이병헌의 행동에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양자가 이 문제로 인해 법정 공방까지 갈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자 SBS 출신인 <파라다이스>의 이장수 PD가 중간에 나서 양자의 화해를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BS는 얼마전 외주 프로덕션이 제작하는 새 일일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가제)에 이홍렬이 출연하는 문제를 놓고 예능국 PD들이 반발해 한바탕 홍역을 앓기도 했다. 방송사의 외주 프로그램 편성비율이 점차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번 SBS와 이병헌간의 전속갈등은 방송가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oldfie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