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이르러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퓨전화 하고 있는 것 같다. ‘녹인다’는 뜻의 퓨즈(FUSE)를 명사형으로 만든 이 단어의 의미 그대로 음식과 패션, 인테리어를 비롯해 모든 문화 예술의 장르들이 혼합, 변화되는 화학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퓨전 현상은 이제 우리 시대의 문화 스타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퓨전이라는 현상이 오늘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원시 시대 이래로 산업화되기 이전까지 만물은 무엇이든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상호 침투하고 화합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생각이 만물의 관계를 규정하는 자세였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전을 위해 흔히 3S의 규격화(Standardization), 전문화 (Specification), 특수화(Specialization)를 추구해 온 사회 경제 논리는 당연히 존재 간의 상호작용과 전체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각자의 분절된 영역들이 전문적으로 완전성을 추구해 온 것이 산업사회의 역사이다. 하지만 이제 고립된 영역들은 자신 만의 완벽성을 의심하면서 분야 간의 틈새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런 간극을 메우고자 서로 융화하여 새로운 관계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만물이 가지고 있던 원래의 모습을 찾으며 서로가 서로를 퓨전화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경계 자체를 지니지 않은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이런 현상을 더욱 가속화 시키고 있다.
#이질적인 것들을 혼합하여
1979년 뉴 올리언즈에 세워진 찰스 무어의 ‘이탈리아 광장’은 퓨전 디자인의 서곡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을’이라는 원칙 아래 장식과 역사적 모티브가 혼합된 이 건물은 여러 요소들의 혼합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만다라다. 고대의 신전 이미지에 현대적인 네온이 부착되고 광장 바닥으로는 물이 흐른다. 원형과 아치와 열주가 불규칙하게 배열 된 이 건축은 사각형의 도시에서 여러가지 이질적인 것들의 공존을 보여주고 있다.
필라델피아의 ‘부다칸’ 레스토랑에서는 종교의 엄숙성과 세속의 도락(道樂)이 넘나들고 크로스 오버되고 있는 듯하다. 부처상 앞에는 22인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는데 이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종교가 지닌 제의적 환희, 우리나라와 다른 음주문화, 불교에 대한 인식의 차이 등을 생각할 때 단지 장식상의 혼합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뭐니 뭐니 해도 현재까지 디자인에서 퓨전의 정수는 역시 패션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에 등장하는, 가부키를 연상시키는 아마딜라 여왕의 화장과 말레이시아 복장의 혼합은 퓨전 패션의 대중적인 예이다. 디자이너 질 샌더의 패션은 단순한 선으로 동양의 정적미를 표현했다고 평가된다. 모델은 장식없는 깨끗한 면 소재의 옷에 어린아이가 장난친 듯한 입술모양, 장난감 같은 새 둥지를 올려놓은 모자를 쓰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린아이의 세계와 어른의 표정이 합쳐지면서 무언가 다른 분위기를 생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장르의 것들이 이질적으로 섞이는 것만은 아니다. 디자이너와 수용자의 상호교류 또한 퓨전 디자인의 특징이다. 에이프릴 그레이만의 자화상인 그래픽 작품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모사해 놓은 것이 아니다. 화학 분자 이미지, 사막, 공룡, 낙서 등 여러 단편적인 이미지와 무의식을 나타내는 듯한 요소들이 하이브리드(Hybrid·이종교배)되어 자신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만든 작품이 아니다. 이것은 나 자신이다. 나는 계속적으로 디자인되고 있다”는 설명이 붙은 이 작품의 수용에는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된다. 즉 디자이너는 설득자가 아닌 제시자로서 인식되며 수용자는 자신의 선택과 판단을 디자이너와 함께 수행해 나가야 하는 인터액티브한 디자인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자동차 디자인계에서는 작년과 올해 퓨전의 열풍이 일고 있다. 크라이슬러 ‘그랜드 체로키’는 지프와 승용차의 기능과 형태를 혼합하여 만들어졌으며, 베르토네의 ‘지프스터’는 지프의 강력한 힘과 스포츠 카의 속도감을 퓨전화한 대표적인 예로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다.
#공존의 세계관으로 확장시켜야
퓨전 현상의 근본에는 산업사회의 분열된 인간들이 소외와 간극을 극복하고 전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바람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현상적으로는 문화적인 도락성과 집단의 축제성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그것이 판매의 경쟁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퓨전을 삶의 실천적 지식으로 승화 시키기 위해서는 자연과 인간, 동양과 서양, 여자와 남자, 이성과 감성, 너와 나 같은 이분법적 대립과 상극의 논리를 뛰어넘어 관계있는 모든 것을 한 몸으로 껴안음으로써 상생(相生)하고, 상승(相乘〓SYNERGY)하여 상승(相勝〓WIN WIN)하는 공존의 세계관으로 확장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글=전승규(국민대 교수·테크노디자인 대학원)skieon@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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