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오 형제여!->오 코엔이여! 농담의 끝은 어디인가?

  • 입력 2000년 11월 20일 15시 27분


코엔 형제의 장난기는 어디로 튈 지 모른다. <파고> 이후 잠시 무게 있는 연출자로 돌변하는가 싶더니, 그들은 곧 예전의 장난꾸러기로 돌아왔다. 아니 예전보다 더 심해졌다. 그들이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를 만들며 장난을 건 소재는 고전문학의 걸작인 호머의 <오디세이>다(이런 무례한 짓을 할 사람은 역시 코엔 형제밖에 없다).

코엔 형제가 <오디세이>를 가공한 솜씨는 더욱 가관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영웅 율리시즈는 죄수로 돌변하고,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고향으로 향하는 율리시즈의 험난한 여정은 변심한 아내를 꼬시기 위한 로맨스 여행으로 환원된다. 기원전 800년에 <오디세이>라는 걸작을 남긴 호머는 지하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코엔 형제는 서사가 거세된 자리에 유쾌하고 심란한 농담들을 잔뜩 집어넣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30년대 미시시피로 무대를 옮긴 율리시즈는 월계관 대신 철통같은 수갑을 차고 있다. 줄무늬 죄수복을 입은 그는 삼엄한 경비를 피해 도망중. 함께 발이 묶인 두 죄수 역시 율리시즈의 고향 땅에 묻혀 있다는 120만 달러에 눈이 멀어 이 위험한 탈주 여행에 동참한다.

포마드 기름 없이는 한시도 참을 수 없는 율리시즈(조지 클루니), 한쪽 눈에 안대를 한 멍청이 피트(존 터투로), 피트의 멍청함(dumb)을 뛰어넘는 더 멍청이 (dumber) 델마(팀 블레이크 넬슨). 이 세 사람은 고전 문학의 무게를 탈색시키는 원흉이다.

피트는 외눈박이 괴물 사이클롭스의 '해석판' 인물이지만, 과연 누가 그를 사이클롭스에 당당히 비교할 수 있을까. 그건 한마디로 도발이다. 율리시즈를 기다리느라 수많은 구혼을 거절했던 아내 페넬로페(홀리 헌터)도 이 영화에선 정숙한 여인으로 남아있지 못한다. 그녀는 돈과 명예를 위해 남편을 헌신짝처럼 버린 미망인으로 그려지고 있다.

코엔 형제의 이 지나친 허풍에 잠시 넋을 놓고 있을 즈음 영화는 갑자기 뮤지컬로 변해버린다. 미국 남부를 헤매던 세 남정네는 멀리서 들려오는 노랫가락에 홀려 성스러운 호수에 죄를 씻고, 노래하는 빨래터의 세 처녀에 넋을 놓다가 개구리로 변해버린다(피트가 정말 개구리로 변한 것인지는 영화 속에서 직접 확인할 일).

빨래터의 세 처녀는 성스러운 목소리로 율리시즈의 배를 유혹했던 사이렌인 듯한데, 그들이 정말 사이렌의 아류작이라곤 차마 믿고 싶지 않다. 목소리는 근사하지만 그들의 외모는 너무 초라하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

우여곡절 끝에 고향 땅에 당도한 율리시즈 일행은 과연 그곳에서 120만 달러의 거금을 거머쥘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모든 건 꿈에 지나지 않았다. 120만 달러는 두 친구와 함께 발이 묶인 율리시즈가 가상으로 만들어낸 유인물. 처음부터 그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보물이었다.

<오디세이>를 읽으면서 코엔은 어떻게 이런 식의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우정과 가족애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는, 우연과 비약이 남발하지만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 여비를 벌기 위해 지방 라디오 방송국에서 즉석으로 취입한(결과적으론 그들을 스타로 만들어준) 노래 '비탄에 잠긴 사나이'가 흥겹게 울려 퍼지고, 세 명의 연기파 배우들이 펼쳐내는 엽기적인 코미디가 웃음보를 쥐어짜게 만드는 영화.

영화를 보고 나면 코엔 형제에게 되묻고 싶어진다. "오 코엔이여! 농담의 끝은 어디인가?"

(사족)제목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는 1941년 프레스턴 스터지스 감독의 코미디영화 <설리반의 여행> 속 주인공이 만들고 싶어하는 극중 영화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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