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깊이듣기]결혼행진곡은 비극의 노래?

  • 입력 2000년 11월 21일 13시 58분


100%다. 기자가 지금까지 참석했던 결혼식에서 단 하나도 예외가 없었다.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결혼행진곡에 맞춰 신부가 입장했고, 멘델스존의 극음악 '한여름밤의 꿈'에 나오는 결혼행진곡 (축혼행진곡이라고도 부름)에 따라 신랑 신부가 퇴장했다. 물론 기자 자신의 결혼식도 마찬가지였다. 두 작곡가의 활동연대에서 한세기 반이나 지나, 먼 극동의 외딴 나라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두 작곡가와 대면하는 셈이다.

두 작품이 환영받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다. 두 곡 모두 결혼식에 맞춤한 품격과 분위기를 전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진지하고 엄숙하며 가사 첫머리 그대로 '진실한(treulich)' 바그너의 곡, 신혼의 환희를 폭죽처럼 화려하게 터뜨리는 멘델스존의 곡. 두 작품의 이미지는 오늘날 결혼식 자체와 떼어낼 수 없이 한데 묶여버렸기 때문에 따로 생각하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배경을 살펴보면 과연 결혼식에 적절한 곡이기는 한걸까 싶기도 하다.

'한여름밤의 꿈'은 전설의 왕과 여왕의 결혼식에 맞춰 두 쌍의 젊은 연인들도 자기 사랑을 찾는다는 줄거리이니 별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로엔그린'쪽이다. 결혼행진곡과 함께 3막의 결혼식장면이 시작된다. 그런데 3막 끝에서 신랑 신부는 어떻게 될까? 놀라지 마시라. 신랑은 멀리 가버리고 신부는 죽어버린다. 결혼식 치고는 이런 '엽기'가 따로 없다.

왜 그런 불행이 닥쳤을까. '묻지마'의 계율을 어겼기 때문이다. 구조주의 문학자들이 전세계의 전설에서 구리조각처럼 흔하게 찾아내는, '상대방의 신원을 알아내는 순간 불행이 닥친다'는 금문(禁問)의 동기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서도 이런 '묻지마 모티브'가 중요하게 쓰인다.

따져보면 멘델스존과 바그너가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도 썩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멘델스존은 잘 알려진 대로 유태인이다. 바그너는 반유태주의자였다. 히틀러는 집권하자마자 멘델스존을 비롯한 유태인의 음악을 금지했고 대신 바그너의 음악을 장려했다. 히틀러의 '독일 우월주의'는 바그너의 음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설이 설득력있게 들릴 정도다. '제3제국'에서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은 잊혀진 행진곡이었다. 대신 오늘날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을 들을 수 없다.

경쾌하고 섬세한 음악을 작곡했던 멘델스존과 육중하고 비장한 음악을 썼던 바그너가 서로의 음악을 좋아했을 것 같지도 않다. 멘델스존은 바그너보다 4년 연상이지만 바그너가 중기 대표작인 '로엔그린'을 썼을 때 멘델스존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었다. 멘델스존이 평생 바그너의 음악을 들어보지 못했을 가능성도 크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앞으로 신부 입장 때 만큼은 불행한 한쌍을 연상시키는 '로엔그린'속의 결혼행진곡 대신 다른 작품을 쓰면 어떨까 싶다. 그런데 그 곡 만큼 엄숙하고 화평하며 진지하고 아름다운 작품이 없는 게 탈이다. 이렇게 얘기했더니 누군가 '아바'의 'I do I do I do I do I do I do' 는 어떠냐고 한다. 우리딸 결혼식에서는 별로 쓰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내가 팔짱을 끼고 신랑한테 인도할 건데, 웃음이 나오면 어떻게 하라고?"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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