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론 디아즈, 드류 배리모어, 루시 리우. 이 세 명의 '쭉쭉빵빵' 미녀들이 파워플한 액션과 섹시한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미녀 삼총사>(charlie's Angel)는 <미션 임파서블>이나 <도망자> <엑스 파일>과 마찬가지로 TV 시리즈를 원본으로 한 영화다.
1976년부터 1981년까지 무려 5년간 114편이나 방영된 이 미니 시리즈는 남성들에겐 노골적인 성적 판타지를 제공했고, 여성들에겐 새로운 패션 아이템을 제공했다. 한마디로 '찰리의 천사들'은 그 시대의 '걸어 다니는 패션 핸드북'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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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사브리나, 질, 캘리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이 세 명의 미녀들은 2000년 CF감독 출신의 조셉 메킨티 니콜(McG)에 의해 나탈리(카메론 디아즈), 딜랜(드류 배리모어), 알렉스(루시 리우)라는 새 이름을 부여받았다.
이름이 달라졌다고 활동 패턴까지 바뀐 건 아니다. 그녀들은 여전히 '찰리'라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위해 일하며, 쭉 뻗은 '몸'을 무기로 사건을 해결한다.
'찰리'와 '천사들'의 중간에서 사건 지령을 담당했던 존 보슬리(빌 머레이)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세 미녀 모두 뛰어난 변장술과 댄스 실력을 지녔다는 것, 사건이 해결되면 한 자리에 모여 축배를 든다는 것도 비슷하다(TV 시리즈의 라스트신은 언제나 세 미녀들이 잔을 부딪치는 장면으로 끝났다).
그러나 2000년대의 미녀들은 70년대의 미녀들처럼 고리타분하진 않다. <미녀 삼총사>는 70년대의 아이콘(마빈 게이, 에어로 스미스, 패트보이 슬림 등 그 시절을 풍미했던 가수들의 음악이 줄곧 흐른다)을 장신구처럼 활용했을 뿐 다분히 2000년대 식 패션과 과학으로 중무장했다. 기껏해야 소형 총을 들고 무게를 잡았던 미녀들은 이제 최첨단 과학을 활용해 사건을 해결하며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미래형 의상을 입고 설친다.
어린 시절 골칫덩어리 문제아에 불과했던 세 명의 소녀들은 세 개로 분할된 화면 속에서 각각 엽기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한때 구제불능이었던 이 소녀들은 다행히 머리가 좋고 외모가 출중한 덕분에 '찰리'라는 정체불명 사나이를 만나(물론 목소리로만 만난다) 비로소 '인간이 된다'. 세련되고 지적이지만 가끔 푼수끼가 도지는 삼총사의 리더 나탈리, 큰 엉덩이와 가슴을 무기로 육탄전을 벌이는 터프걸 딜랜, 채찍 하나로 넥타이 부대 아저씨들을 자지러지게 만드는 카리스마의 소유자 알렉스.
114회의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동안 볼 꼴 못 볼 꼴 다 봤던 세 미녀들은 영화 버전에서 컴퓨터 천재 녹스(샘 록웰)의 구출작전에 투입된다. 음성 신원확인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녹스를 납치한 범인은 세계적인 통신위성회사 레드 스타의 소유주 팀 콜윈(팀 커리). 미녀들은 현란한 액션과 변장술로 녹스 구출에 성공했지만,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직 도난 당한 소프트웨어가 콜윈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첫 번째 사건보다 훨씬 난위도가 높다. 소프트웨어가 숨겨진 '비밀 방'에 들어가려면 출입이 인가된 사람들의 각막과 지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미녀들'에게 그런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그녀들은 갖가지 변장술과 전술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귀중한 소프트웨어를 가로챈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반전을 시도, 단순했던 사건을 한 바퀴 틀어버린다. 착한 사람인 줄 알았던 녹스의 본색이 드러나고, 사건의 본질이 달라진다. 여태까지의 사건은 모두 녹스의 자작극. 코미디와 탐정 수사극에 머물렀던 영화는 반전이 시작될 무렵부터 액션의 비중을 대폭 높여간다.
세 미녀는 <매트릭스>의 그들처럼 멋진 와이어 액션과 쿵푸 액션의 달인. 미모와 지능, 힘,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다. 몸에 쫙 붙는 옷을 입고 해변과 온천을 종횡무진하는 그녀들을 보노라면, 얄궂은 페미니즘 운운하는 게 다 쓸 데 없이 느껴진다. 너무 노골적으로 성적 이미지를 팔고 있기 때문에 시비를 걸 마음조차 싹 가셔버리는 것이다.
TV 시리즈에서 위기에 내몰린 미녀들을 도왔던 빌 보슬리는 영화 속에서 아예 미녀들에게 '짐' 같은 존재로 내몰린다. 덕분에 이 영화는 일견 여성 파워를 실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슴을 내놓고 입술을 벌린 채 야릇한 표정을 짓는 그녀들이 과연 여성 파워의 선봉에 설 수 있겟는가. 모든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미국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에 대해 "장님을 위한 눈요깃감에 불과하다"고 한마디로 쏘아붙였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미녀 삼총사>는 TV 미니시리즈도, 영화도 아닌 '신세대용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세 미녀들을 드라마틱하게 소개하는 모양새나 갖가지 리와인드, 시간의 축약, 늘리기를 활용한 편집 기술 등은 확실히 현란한 게임 화면을 연상시킨다.
70년대 것에서 촌티를 가셔내느라 수고한 감독의 노력이야 가상하지만, 추억을 회상하고 싶은 3,40대의 입맛을 건드리기엔 유용할 것 같지 않다. 다만 TV 미니시리즈를 구경조차 하지 못했던 신세대들은 이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만하다. 매력적인 여배우들이 시도 때도 없이 옷을 벗고, 현란한 액션을 선보이는 데 정신을 놓지 않을 젊은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무려 4주간 1위를 고수했던 'Meet the Parents'를 제치고 전미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 콜롬비아 영화사상 일일 평균 네 번째로 높은 수익을 거뒀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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