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신간]21세기 역사학에 던진 '20세기 화두'

  • 입력 2000년 11월 24일 18시 49분


■20세기 역사학, 21세기 역사학/한국역사연구회 엮음/341쪽 1만 2000원/역사비평사

제목만 보고 무의식적으로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무의미하게까지 느껴졌던 ‘새롭지만’ 가벼운 담론의 홍수 속에서 오랜만에 우리의 지난날에 뿌리를 둔 지식인들의 고뇌하는 새로움을 보았다고나 할까? 포스트모던도 좋고 탈근대도 좋지만 뿌리를 두지 못한 단절적 사고, 국적 없는 사고 속에서 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허망할 뿐이다.

20세기 말 가장 치열하게 살았다고도 할 수 있는 필자들은 과학적 역사학, 진보의 역사학에 바탕을 둔 채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었다. 필자들은 변화하는 새 세기 앞에서 수구적이지도 ‘유행’에 영합하지도 않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의 가치는 우선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김인걸교수(서울대)의 ‘열린 민족주의’와 결부된 ‘열린 과학적 역사학’이나, 김태승교수(아주대)의 ‘우리 내면의 입장에서 보는 중국사 인식의 필요성’, 그리고 최갑수교수(서울대)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전적 해석과 수정주의 해석의 상보(相補)’. 이들의 문제제기는 현실과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역사학을 21세기라는 새로운 상황에 적용시키려는 절제된 노력의 결과였다.

또한 내재적 발전론을 계승함과 동시에 구조적 복선적 역사인식, 열린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을 포괄하는 새로운 ‘장기 근대사론’의 정립 필요성을 제창한 정연태교수(가톨릭대), “통일성 없는 다양성에 머물고 있는 ‘탈근대주의’를 극복하고 민중생활의 일상성까지 담아내는 보편적 발전법칙의 추구”를 주장한 신용옥씨(고려대 강사), 남한 북한 미국의 ‘평화 삼각체제’ 수립이 통일을 향한 필수적 과정임을 논증한 도진순교수(창원대). 이들의 글은 그간 이루어졌던 역사학계의 소모적이기까지 했던 논쟁들을 미래지향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끝으로 21세기 역사교육 및 역사대중화의 방안을 담고 있는 류승렬교수(강원대)와 오종록교수(고려대)의 글은 21세기를 맞는 역사학계의 실천적 대응 방향을 가늠케 한다.

물론 지금과 같은 지적 혼돈의 상황에서 제 땅에 뿌리를 둠과 동시에 평등하고 자유로운 인간 행복 추구와 진보의 새로운 방향을 명쾌하게 읽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각론적 수준을 넘어 고뇌의 결과를 종합하고 탄탄한 뿌리를 지닌 새로운 담론으로 만들어 내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1980∼90년대의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을 이끌어왔던 한국역사연구회가 10년간의 실천과정을 토대로 한 미래지향적 문제제기는 ‘새롭지만’ 가벼운 담론의 홍수와는 구별되는 무엇이 있다. 이 책은 우리 역시 이들의 고뇌와 함께 출발해야한다는 그런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다.

김 익 한(명지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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