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 지음 이정식 옮김
186쪽 7500원 황전▼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 팔도총론(八道總論)편에서 우리나라 8도의 풍수가 지방마다 톡특한 인간의 심성을 만들어냈다고 기술했다. 사람은 자연에 의존해 살아야하는 존재이니 만큼, 시간이 지나면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중국도 양쯔(揚子)강을 경계로 사람들의 심성이 달라진다. 임어당(林語堂)의 말을 빌리자면 ‘북방인은 순수하고 질박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만 오랜 전쟁으로 고난의 생활이 습관화되어 있는 사람’이고 ‘남방인은 안정되고 조용한 생활에 익숙해 두뇌가 뛰어나지만 뻔뻔한 상인이며 전쟁터에서는 겁쟁이’다.
지방 나름의 독특한 심성은 상행위에도 나타난다. 중국의 두 개 중심지 베이징(北京)인 과 상하이(上海)인을 비교해 보자. 베이징은 명청대의 수도였던 만큼 베이징인은 정치적인 본능을 갖고 있다. 사농공상의 차별이 머리에 박혀 있고,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과거급제를 통한 ‘재산과 권력’의 획득이었다. 당연히 손톱만큼의 이익을 얻기 위해 싸워대는 상인은 멸시의 대상이 됐다.
천시받는 곳에 사람이 모일 수 없어 베이징의 모든 상행위의 주도권은 외지인에게 넘어갔다. 의료상은 저장(浙江)성, 고리대금업은 장쑤(江蘇)성, 일상잡화는 안후이(安徽)성 같이. 유일하게 북경인들이 흥미를 갖고 있던 상행위는 골동품상. 이마저도 은밀한 곳에서 고급 관료나 조정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만나려는 필요가 만들어 낸 산물이라니 베이징인들의 정치색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상하이인은 진짜 상인이다. 상하이는 인적 구성부터가 베이징과 다른데 100년 이상 상하이에 살아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먹고 살 길을 찾아 내륙에서 건너 온 사람들이었다. 여기에 외국의 모험가까지 가세했다. 청조(淸朝)말까지만 해도 부동산과 아편무역을 통해 수 백배의 이익이 터지던 상하이는 외국인의 눈에 대단히 매력적인 땅이었고, 이익을 좇아 몰려든 외국인들과 상하이인의 경쟁이 시작됐다. 생존을 위한 경쟁으로 인간의 심성도 바뀌었다. 투자를 위한 선견지명이 생겼는가 하면 ‘모 아니면 도’ ‘이기면 아군, 지면 적군’이라는 투기심리도 커져 갔다. 상하이인이 갖고 있는 흥정실력과 허영심도 필요가 만든 산물이었다.
그럼 중국에서 최고의 상인과 최악의 상인은 어떤 지역 사람일까? 최고는 저장성. 중국 해안선의 중앙에 위치해 있고, 교통이 편리해 일찍부터 무역에 눈을 떴다. 최악은 동북인.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으로, 지리적 위치는 중앙과 동떨어져 있어도 먹고 입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있어 상행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동북인의 소망은 ‘30 이랑의 전답, 황소 한 마리, 마누라와 자식, 따뜻한 온돌방’ 정도였을까.
지역에 따라 상인도 다르고 상행위도 다르지만 ‘신용’이 상인의 원칙이라는 데 모두가 일치한다. ‘신용’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상인의 세계가 만들어낸 하나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서점가에서 조선시대 대상인의 책이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우리 시대도 ‘신용’에 충실한 진짜 상인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우증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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