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파리에 묻힌 이응노, 어떤 꿈을 꾸었을까

  • 입력 2000년 12월 1일 20시 01분


■ 고암 이응노, 삶과 예술

고암미술연구소 엮음

556쪽 2만원 얼과알

1989년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회고전 개막 당일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파리에서 숨을 거둔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는 질곡의 한국현대사를 몸으로 부딪쳐야 했던 화가다.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에게 서화를 배운 후 일본으로 유학했고, 일제시대 선전(鮮展)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해방 후 홍익대 등에서 교수를 역임하다 프랑스로 가 유럽 미술계에 독창적인 추상화를 발표해 크게 주목받았다.

그러나 1967년 이른바 동베를린사건으로 2년반에 걸친 옥고를 치렀고, 1977년에도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국내에서 금기시되던 작가였다. 하지만 1980년대말부터 그의 예술에 대한 소개와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근현대기의 중요 작가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1989년 이후 크고 작은 전시를 통해 그의 예술적 성과가 국내에 알려지긴 했으나, 정치적 이유로 오랜 기간 국내와 단절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의 삶과 예술의 진면모를 파악하는 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올해 고암미술연구소의 발족과 고암미술관의 개관으로 마침내 이응노의 예술세계에 대한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자료를 모아 고암미술연구소가 엮은 이 책은 따라서 한 작가의 삶과 예술을 연구하기 위한 기본정보의 창고라 할 만하다. 국내외 여러 평론가들의 평문이나 논문을 비롯해 작가 자신의 글들을 토대로 하고 유족의 감수까지 거친 연보는 근현대 미술 연구자에게 귀중한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 일반 독자들로서는 한 예술가의 예술정신과 생을 되돌아보는데 유익한 도서로서 손색이 없다.

특히 제5부에서 일본화가 도미야마 다에코 여사와 작가, 그의 부인 박인경 여사가 가졌던 대담은 마치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현장감이 돋보인다. 이 대담을 통해 우리는 그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승리와 민족화해를 향한 그의 신념과 염원을 읽을 수 있다. 또 문자추상으로부터 80년대의 ‘군중’ 연작까지 그림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자료집이어서 본격적인 작가연구에는 미흡하다. 그러므로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그에 대한 보다 학술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최태만(미술평론가·서울산업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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