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문화와 디지털의 만남’을 주제로 2일 서울 연세대 공학관에서 열린 ‘한국영상문화학회’ 가을 학술대회는 한자(漢字) 문화와 디지털 문화의 유사성과 연관성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있었다.
이날 김성도(고려대 인문학부)와 심소희(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상형문자인 한자와 컴퓨터 ‘아이콘’의 유사성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
이날 김성도(고려대 인문학부)와 심소희(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상형문자인 한자와 컴퓨터 ‘아이콘’의 유사성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
두 교수의 논의는 우리가 그림만 보고도 특정 파일을 지칭하는 프로그램을 실행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실제 각국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예컨대 ‘내 컴퓨터’ ‘My Computer’(마이 컴퓨터) ‘我的電腦’(띠엔나오) ‘マイコソプ―タ’(마이콤푸타)를 표상하는 컴퓨터 모양의 아이콘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 등이 한문을 가지고 필담(筆談)을 나눌 수 있는 것과 개념적으로는 동일하다. 결국 ‘아이콘’은 수천년전 갑골 위에 새겨진 그림문자의 적자(適者)인 셈이라는 것.
두 교수는 “21세기 중심글자는 영어 같은 음성 중심이 아닌, 한자 같은 시각 중심의 글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자와 아이콘이 표음문자에 비해 한 글자에 많은 정보량을 농축하고 있고, 글자의 모양에 일관성이 있으며, 시공을 초월하는 성격을 가졌다는 공통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문화평론가 서정신씨는 우리 옛 지도에서 디지털 가상체험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발표로 주목을 끌었다.
보통 ‘인터넷 가상박물관’이나 ‘관광명소 사이버 관광’류의 가상 체험에서는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의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실감나는 경험을 제공한다. 주로 공간을 360도 회전해 보여주는 파노라마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재현 방식은 사용자에게 현기증을 일으키는데다 현실감이 떨어진다.
서씨는 이 같은 점에서 고지도가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줄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디지털 가상체험의 파노라마 방식 관점에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조감도 관점을 결합시킨 몇몇 고지도들을 그 예로 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선시대에 그려진 ‘정읍현지도’. 전체적으로는 위에서 본 듯하지만 골짜기와 주택이 제각각 방향으로 그려져 있다. 지도상의 길을 따라 걸어가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이를 통해 항공사진이나 디지털 가상체험보다 더욱 현실감을 갖게 해 준다.
서씨는 이를 “선조의 직관이 첨단 디지털 기술을 능가하는 사례”로 꼽으면서 “고지도에서 좀 더 사실적인 디지털 지도를 만들기 위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