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어체로 씌어진 여행기 한 권이 출간되었습니다. 경어체로 씌어진 글은 대상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느낌을 숙연하다고 해야 할지 경건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아예 '-습니다' 체로 글을 써봅니다. 그러고보니 무척 겸손해지는 느낌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10루피로 산 행복>(바다출판사). 이 책에는 사진작가 이해선이 티벳 라다크 지방을 여행하고 돌아와 쓴 글과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을 한 권의 햇빛과 바람이라고 불러도 괜찮습니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눈부신 사진과 글이 당신을 먼 라다크의 햇빛 쏟아지는 땅으로 데려갈 테니까요.
"그 천 뒤에 서서 눈이 서서히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난 너무나 강한 햇빛 사이로 걸어 들어왔거든요. 이곳의 메마른 땅들은 이제 햇빛을 받아들이기에도 지쳤나 봅니다. 대지에서 거부당한 햇빛은 그곳을 지나는 내게로 무작정 달려들었습니다."
라다크에서는 돌가루로 만다라를 만들어 강물에 띄우는 제의(祭儀)가 있다고 합니다. 위의 빛나는 표현은 저자가 만다라를 만드는 장면을 목격한 순간 씌어진 것입니다. 만다라란 불법에 이른 경지를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그 순간의 햇살이 몸을 파고드는 것 같습니다.
그 옆의 사진은 이 전율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만다라를 만드는 라마승의 뒷덜미에 떨어진 햇살이 중앙에까지 띠를 이룹니다. 나머지 배경은 짙은 어둠 속에 묻혀 있습니다. 해탈이 빛과 어둠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 순간의 사진이 만다라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죠. 개인의 성지(聖地)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도 마음 속에 나만의 성지를 만들어두었습니다. 왠지 그곳은 높은 곳에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나는 그곳을 샹그릴라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성지란 가슴에 뚫린 구멍 같은 것입니다. 저자는 용감하게 그 구멍을 메우러 라다크를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샹그릴라엔 전쟁이 한창입니다. 푸른 초원 위로 포탄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구멍이 메워질 것 같지 않습니다.
대신 저자들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사람들은 햇빛과 바람과 전쟁 속에 묻혀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체링이고 아짐바 소남이고 스칼장 아몽입니다. 동방에서 온 한 여행객의 슬픔을 이들이 어루만져줍니다. 보살핌이란 단어가 따뜻하게 마음에 박힙니다.
이상합니다. 이 책은 처음 손에 든 책 같지가 않습니다. 언젠가 보았던 것 같은 기시감(旣視感)이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막연한 동경으로 폐광촌을 헤메던 시절 손에 쥐고 있었던 '침묵의 뿌리'(조세희)나 요전에 읽었던 '검은 사슴'(한강) 같은 책도 떠오릅니다. 조세희 씨의 책은 흑백 사진집이었고, 지금은 과거에 묻혀 있습니다. 이 책의 티벳 라다크는 먼 미래가 될 것 같습니다.
저자 이해선은 여행 사진가이자 여행 칼럼니스트로 활동중이라고 합니다. 1987년에 사진에 입문했고 세계 50여 나라의 오지를 여행했습니다. 1993년부터 한국의 폐사지(廢寺地)를 찾아 '오래된 시간들'이라는 기록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월간 <산>에 연재했던 것을 수정하여 실은 것입니다.
(10루피로 산 행복/바다출판사/224쪽/값7,000원)
안병률 <동아닷컴> 기자mok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