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왕경태의 실제 모델인 황경태(43)씨가 만화계에서 잘나가는 (주)학산문화사 대표이사라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왕경태와 닮았나요? 경태는 제 자신을 모델로 기획한 인물입니다. 성만 바꾼 거죠."
경태의 뚝심 덕분일까. 황 대표는 최근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새 사옥을 마련하고 또 한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95년 (주)대원씨아이에서 분사한지 5년만의 일이다. 만화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 중 한 명인 황대표를 새 보금자리에서 만났다.
"돈 많이 벌어 새 건물 지어서 좋겠다고들 하지만 저는 걱정이 앞섭니다. 하나를 이루었으니 또 다른 것을 찾아야 하니까요."
70년대 만화가로도 활동한 황씨는 만화잡지 편집장으로 출발해 최고경영자 자리에까지 오른 성공한 인물로 통한다. 사실 학산이 모체격인 대원과 어깨를 겨루는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황씨 자신을 포함해 거의 없었다.
23세란 최연소 나이로 만화잡지 <소년세계>에 등단한 황씨는 79년 당시 미술기자, 방송 프리랜서, 만화작가라는 다채로운 직함을 한꺼번에 달고 다녔다.
"밥먹고 살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죠. 무명시절 원고 한장에 몇백원도 안됐거든요. 그래도 만화가 좋아서, 만화에 파묻혀 살다보니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88년 한국 최초의 주간 만화잡지 <아이큐 점프>를 창간하면서 황씨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게 된다. 5년 동안 연재를 계속했던 <아이큐 점프>는 6개월만에 5만부씩의 판매가 늘어났고 한때 30만부 판매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처음에는 잘 팔리니까 마냥 좋았지요. 하지만 곧 두려워지던걸요. 최고의 자리라는 게 그렇잖아요"
아이큐 점프로 성공을 거둔 황씨는 영세한 국내 만화시장의 구조를 현대적인 만화잡지 시스템으로 정착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소년 챔프> <영챔프> <월간 챔프> <팡팡> <부킹> <파티> <주니어 챔프>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간 잡지들이다. 새로운 잡지를 창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량있는 신인을 열심히 발굴하게 됐다.
"만화는 하나의 기획상품입니다. 작가 섭외서부터 캐릭터 분석 등 하나부터 열까지가 모두 철저한 기획의 결과물인 거죠"
만화가 공동작업의 산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아는 그는 인기 작가만 부각됐던 7·80년대 처음으로 만화표지에 '스토리보드 작가'의 이름을 새겨주기도 했다. 그 덕분에 김준범, 장태산 등 실명으로 작품을 낸 신인작가들은 점차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다양한 만화장르를 구축해 나갔다.
만화잡지를 만들면서도 황씨는 자신만의 불문율을 만들었다. 한 권의 만화잡지에 일본작품의 비중이 30%를 넘지 않게 한다는 것인데 그런 원칙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그가 이런 원칙을 세운데는 일본 만화와 다른 우리 만화만의 강점이 있기 때문이란다.
"일본만화, 일본만화 하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정서가 있어요. 그걸 파고들면 되는거죠. 국가가 지원을 안해준다고 불평하기보다 만화에 대한 강한 열정으로 도전하면 되는 겁니다."
만화시장이 불황이라고 하지만 황씨는 의욕으로 가득차있다. "저는 계획 세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연말이라고 내년도 계획 세우느라 다들 난리지만, 저는 그시간에 한 권의 만화책이라도 더 봅니다".
그래도 그 심중이 궁금해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겨우 꺼내는 말이 "영상사업을 준비중"이란다. 만화를 중심으로 하는 소프트웨어, 캐릭터 사업, 애니메이션을 포괄하는 토털 만화 비지니스를 구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화에서 번 돈은 다시 만화에 투자한다는 자신의 원칙을 실천하는 셈이다.
오현주 <동아닷컴 기자>vividr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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