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의 새로운 장편소설 ‘순정’은 그가 정확히 6년 전에 ‘그곳에는 어처구니가 산다’를 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써온 이래 9번째로 출간된 소설이다. 산문집과 시집까지 포함하면 성석제는 최근 6년 동안 한 해 평균 2권의 책을 발간한 셈이다.
강준만이나 고은, 김윤식 같은 천성적인 다산성 문인들을 제외한다면, 성석제는 가장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문인에 포함된다. 전업작가로서의 성실성이라는 덕목이 이러한 다산성을 낳은 결정적인 요인이겠지만, 창작방법론의 차원에서도 다산성의 비결에 대한 암시를 받을 수 있다.
말하자면, 소설을 이야기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 그리하여 근대적인 의미의 소설이 지녀야할 구성의 원칙이나 리얼리티(개연성)을 포기하는 대신에, 이야기 자체의 축제성을 지향하는 것이 성석제 소설의 기본적인 창작방법일 터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석제는 현대의 구연가(口演家)이다. 작가는 소재(이야기감)만 발견되면 시점과 구성, 형식에 대한 어떤 부담도 없이 자유자재로 한 편의 소설을 축조한다. 그에게 근대적인 소설 구성의 원리는 거추장스런 짐일 뿐이다. ‘순정’ 역시 성석제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던 이러한 소설적 흐름에서 크게 비껴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 독특한 캐릭터의 도둑인 이치도의 파란만장하고 기이한 편력을 다룬 것이 ‘순정’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은척이라는 지명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도둑, 깡패, 도굴꾼, 작부, 건달 등의 변두리 인생을 둘러싼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이 소설을 풍성하게 채우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순정’은 한 편의 일관된 주제와 고정된 인물이 펼치는 단일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포함된 무수한 이야기 넝쿨에 가깝다. 그러니, ‘순정’의 독법은 그 다양한 작은 이야기들을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극장의 변소에서 이치도와 깡패가 대결하는 장면이나, 이치도가 자신이 사모하는 왕두련을 만나기 위해 학교 담을 뛰어넘는 장면은 이른바 이야기의 매혹을 십분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하는 그러한 장면에서 누가 웃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데 성석제식 유머라고까지 할 수 있을 그 유쾌한 웃음의 한 켠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혹시 성석제의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역설적으로 작가의 진정한 자기 갱신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이제 성석제 문학은 동어 반복의 징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비슷한 캐릭터, 유사한 이야기 흐름, 적당한 시기에 터져 나오는 웃음 등등.
이와 연관하여 “누구보다도 이야기꾼의 재능이 발랄한 성석제가 오히려 소설의 해체를 촉진했다”는 비평가 최원식의 지적을 작가는 충분히 음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실상 성석제는 서사의 근대적 형식과 치열하게 대면하더라도 그 자신만의 글쓰기를 보여줄 능력이 있는 작가가 아닐까. ‘홀림’을 발간한 후에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석제는 “이제는 진지하고 재미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성석제의 재미없는 소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 없이 읽고 있을 나를 상상해 본다.
권성우(문학평론가·동덕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