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富村' 성북동]"신흥 부자촌과 격이 다르죠"

  • 입력 2000년 12월 10일 19시 09분


<서울 광화문에서 삼청동을 지나 삼청터널을 빠져나온 뒤 인왕산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을 휘감아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중세 유럽의 성채처럼 높은 벽을 자랑하는 고급주택들.

거리에는 사람들의 발길 대신 고급 승용차들만이 주차장을 미끄러지듯이 빠져나와 어디론지 사라지는 모습들. ‘한국의 베벌리힐스’로 불리는 성북동의 풍경이다.>

◆ '한국의 베벌리힐스' 어떤곳인가

30여년간 우리나라 부촌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성북동이지만 사실 성북동처럼 오랜 세월동안 부(富)와 빈(貧)이 공존해 온 지역도 드물다.

엄밀히 말해 ‘부촌’이라 불리는 지역의 정확한 행정적 명칭은 성북2동 3통과 6통. 총면적 2.13㎢로 서울시내 일반적인 동보다 3배 이상 넓지만 주민은 450여가구에 불과하다.

성북동의 역사는 한국 상류층의 역사와 명맥을 같이한다. 60년대 말 당시 양택식(梁鐸植)서울시장과 차지철(車智澈)대통령경호실장 등 정관계의 고위인사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이후 재벌급 기업인들이 속속 모여들면서 서울의 부촌으로 자리잡았다.

전체 450여가구 가운데 현재 남아있는 내국인 주민은 250여가구. 강남구와 서초구 등 새로운 부촌을 찾아 떠난 이들도 적지 않지만 여전히 ‘전통 있는 부촌’으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구자경(具滋暻)LG그룹명예회장 이동찬(李東燦)코오롱그룹명예회장 신용호(愼鏞虎)교보생명명예회장 등 ‘창업 오너’와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이사회회장 등 재계인사가 50여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한국화단의 원로인 서세옥(徐世鈺)서울대명예교수와 송영방(宋榮邦)화백 등 유명 예술인과 교수가 30여명을 차지한다. 그밖은 의사 변호사 정치인 퇴직관료의 순.

70년대 이후에는 일본대사관저를 비롯해 독일과 유럽연합 등 각국의 대사관저가 자리를 잡으면서 국제적 면모도 갖추게 됐다. 200여가구에 이르는 외국인 가운데는 최근 들어 외국계 회사의 최고경영자들이 부쩍 늘었다.

이곳 주민들은 성북동에 사는 이유로 ‘시내와 가까우면서도 깨끗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첫손에 꼽는다. 특히 예술계 인사들은 수려한 주변 풍광과 맑은 공기가 창작의욕을 부추긴다고 설명한다.

37년간 이곳에서 살아온 정진원(鄭鎭元·50)동덕여대 미대교수는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자연환경과 함께 인근에 산재한 미술관 등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는 결코 누리지 못하는 문화혜택을 받고 있죠. 그래서인지 부모님 대(代)부터 이곳에 살았지만 한번도 다른 곳으로 이사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 쇠퇴하는 전통?

이곳에도 시대의 흐름과 세대교체에 따른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가 보다. 30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2세들이 자녀교육 등을 위해 강남의 아파트나 빌라로 분가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노령화와 공동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

이 지역 부동산업체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에게 세를 내주고 빠져나가는 이들이 가끔 있지만 들어오려는 이들이 없어 매매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집 관리에 부담을 느껴 세를 주고 인근 평창동의 빌라로 이사를 가는 이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성북동은 돈이 많다고 해서 아무나 들어와 살 수는 없는 동네”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신흥부자촌과는 ‘격(格)’이 다른 ‘전통 부촌’이라는 것이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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