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 악령의 인터넷 버전? 지하철에서 외치는 광신도의 종말론 같지만 저자는 과학을 섭렵한뒤 컴퓨터 회사 경영자로도 활약하는 연구가다.
그는 성서가 인터넷의 존재를 예언했다고 주장한다. 요한계시록의 주인공인 인류를 지배할 '짐승', 즉 '사방으로 목과 머리를 뻗고 있는 전설적인 존재'를 컴퓨터 시스템과 네트워크로 단정짓는다.
성서에 적힌데로, 지능을 가진 이 짐승은 말을 하기 시작하고(언어의 입출력), 많은 사람들(컴퓨터 이용자)가 이를 숭배하며, 올가미 같은 그믈망(월드 와이드 웹)을 통해 전 세계를 장악하게 된다는 식이다.
초반에는 불순하기 짝이 없어보이던 주장은 서서히 문명 비판에 기운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화로 전세계는 'www'를 열쇠로 하는 거대한 감시 시스템에 묶여간다는 것. 그 증거로 인터넷, 바코드, 신체 이식용 칩, 스마트 카드, 화상 전화 같은 이기가 '현대적 노예체제'의 수단임을 보여주는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컴퓨터와 그것의 네트워크 자체를 거부하자는 신(新) 러다이트 운동을 선동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기술추수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은 결국 빈틈없는 조작과 통제에 굴복당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결론만 보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 미셀 푸코의 '원형 감시탑(판 옵티콘)'의 종착점과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책이 제시한 주장은 논증적이라기보다는 선언적이다. 요한계시록이 모호한 상징으로 가득한 장시(長詩) 형태여서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분분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며 딴지를 걸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대의 커뮤니케이션이 인간 의식에 미치는 악영향과 고도의 정보 통제사회에 대한 경고 만큼은 경청할 만하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