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친구 케로용의 결혼식을 계기로 초원의 비밀기지를 공유하던 어린 시절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서 일련의 사건들이 켄지 주변에서 벌어진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마크를 단서로 남긴 사건들은 기묘한 연관성을 띄기 시작한다.
그 마크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해내지 못해 애쓰던 켄지는 어린 시절 친구 동키의 편지를 받는 순간, 그 마크가 자신들의 비밀기지 심볼이었음을 기억해 낸다. '또 연락할께' 라며 편지를 보낸 친구의 갑작스런 자살과 함께 켄지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끼는데…
<야와라> <마스터 키튼> <몬스터> 'HAPPY' 등을 통해 국내에서도 폭 넓은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浦澤 直樹)의 최신작 <20세기 소년>(20世紀少年) 1권은 여러 모로 신선한 미스터리 형식을 지니고 있다.
켄지와 친구들의 과거, 그들의 현재인 1997년을 넘나들며 진행되는데 작품은 상징과 암시로 반복되는 플래쉬 백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편린들을 차례차례 제시한다.
<몬스터>에서 이름 없는 괴물 동화와 쌍둥이 주인공 요한과 니나의 어린시절을 액자 형식으로 끼워 넣음으로써 현재의 사건들에 완벽한 개연성을 부여하던 작가의 탁월한 연출력이 <20세기...>에서는 보다 현란하고 변화무쌍해진다고 볼 수 있다.
1권이 발매된 시점에서 미스터리의 전모는 명확치 않지만, 작품은 어린시절에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 보는 지구와 인류의 평화를 지켜내는 허황된 꿈을 켄지가 실현한다는 암시를 짙게 풍긴다. 희미하게 예측 가능한 황당무개한 미래와 우스꽝스럽지만 시종일관 진지하고 심각한 양상을 띄고 있는 현재, 어이 없을 정도로 유치한 과거가 하나의 평면에서 진행되면서 독자가 맛보게 되는 복잡미묘한 감정들은 단순한 미스터리가 불러 일으키는 긴장감 그 이상의 것이다.
'본격과학모험만화’라는 부제는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것이 미스터리와 음모를 떠나서 삭막한 일상에서 벗어난, 지나간 것들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느새 자라버린 몸과 마음을 잊고, 현실을 재는 잣대를 버리고,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으로 <20세기…>가 펼쳐 보이는 인류구원의 모험에 동참해보자. 주인공들처럼 본인도 모르는 새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의 편린들이 또 다른 인류구원의 열쇠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김지혜 <동아닷컴 객원기자> lemonjam@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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