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물학 분야의 창시자인 윌슨이 1978년에 출판한 책이 마침내 번역되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사회생물학적 분석을 다룬 이 책은 이보다 3년 앞서 나온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의 후속편에 해당한다.
두 책에서 윌슨은 하등동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명체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통일적인 생물학적 관점을 제안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사회적 행동은 유전자와 환경에 의한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생명체는 단지 유전자의 전달매체에 불과하다는 윌슨의 주장은 당시 생물학 뿐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나온 그 이듬해 리처드 도킨스는 윌슨의 주장을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시켰다. 그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생존 기계로서 생명체들이 언뜻 보기에 이타적인 행위를 하는 것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유전자가 생존, 번성할 수 있도록 유전자 내에 이미 각인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생물학’에서 윌슨은 자신의 주장을 인간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에 대해 무척 조심스러워 했다. 하지만 윌슨의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인간의 본성이나 사회성에도 적용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나오자마자 생물학자들은 물론 다른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버드대의 같은 동료학자였던 스티븐 굴드는 윌슨의 주장에 대한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제시해 그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몇몇 급진적 과학운동가들은 “사회생물학은 과학의 탈을 쓴 현대판 우생학이며 궁극적으로는 남녀 및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도구로 쓰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윌슨이 제안한 사회생물학을 둘러싼 논쟁은 80년대를 통해 대략 유전학적 결정론과 문화적 결정론, 혹은 생물학주의와 문화주의의 대결 양상으로 진행되어 갔다. 이 논쟁은 때로는 상대방에 대한 심한 오해로 말미암아 아주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하기도 했으며, 서로의 주장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완화된 주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사회생물학 논쟁 초기의 저작으로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한 이 책에서 윌슨은 현재 우리가 보기에 다소 강한 논조로 유전자 결정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판 추천의 글을 쓴 서울대 최재천 교수(동물행동학)의 글을 읽게 되면 원전과는 다소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최 교수는 ‘사회생물학이 비록 생명체의 사회적 행동에 유전자가 차지하는 절대적인 역할을 인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문화와 환경의 요인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무튼 90년대 이후 사회생물학에 대한 관심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의 지식 사회에 이 책은 자연과학자 뿐 아니라 인문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들이 제안했던 본래의 주장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원제 ‘On Human Nature’.
임 경 순(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