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책]루돌프 '빨간코'는 기생충 탓이랍니다

  • 입력 2000년 12월 15일 19시 43분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세계의 산타 대표들이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모여 회의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회의 의장이 “시대는 바뀌고 어린이들도 더 이상 순진하지 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고 합니다. 하얀 수염을 기른 빨간 옷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준다고 믿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 회의에서는 그래서 인터넷에 산타클로스 사이트를 신설하는 문제, 전자 우편을 이용해서 어린이들과 대화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산타클로스를 믿습니까? ‘호, 호, 호’ 하고 웃는 배불뚝이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세상의 모든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신다는 그 말을 당신은 아직도 믿고 있습니까? 사슴이 어떻게 하늘을 날아? 그리고 그렇게 많은 집을 어떻게 하루만에 다 돌아다닐 수 있어? 말이나 되는 소리야? 그래요. 산타클로스를 믿기에는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너무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너무 조금 밖에는 모르는 것이 아닐까요? 여기 ‘예수도 몰랐던 크리스마스의 과학’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뒷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군요.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새로운 즐거움! 크리스마스에 대한 진실과 거짓이 이제 과학으로 밝혀진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진실과 거짓이라? 책을 펼쳐 읽다 보니 숫자들이 눈에 띄는 군요. 산타클로스가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하룻밤만에 주려면 0.0002초에 한 번씩 굴뚝을 들락거려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루돌프가 끄는 썰매가 초속 2060㎞, 그러니까 소리보다 6395배 빠른 속도로 날아야 한다는 군요.

그게 가능하냐고요? 저자는 만약 웜홀(벌레구멍)을 이용한다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을 끌어옵니다. 그리고 썰매를 어떻게 만들면 그런 무시무시한 속도가 나올 수 있는지도 설명합니다.

저자는 크리스마스의 과학을 10년 이상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는 크리스마스 축제가 생명공학에서부터 프랙탈, 신경생리학, 나노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탐색할 수 있는 좋은 소재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는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처녀 잉태, 동방박사를 아기 예수에게로 인도했다는 혜성,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뱃살, 칠면조 고기, 화이트 크리스마스, 초콜렛에 숨어있는 과학적 진실 등에 대해 알기쉽고 재미있게 설명합니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요즘 같은 시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알게된 새로운 사실들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나 딸 혹은 조카들에게는 이야기해주지 마십시오. 특히나 루돌프 코가 빨간 것이 기생충 감염 때문이라는 사실은요. 왜냐고요? 어쩌면 그 아이들은 아직도 산타클로스와 루돌프를 믿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들과 함께 산타에게 e메일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영악한 요즘 아이들이 그걸 믿겠느냐구요. 아니에요. 저 유명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산타를 믿지 않지만, 어린이들은 산타를 믿고 산타에게 편지도 보내고 기도도 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일이다.” 손으로 쓰는 편지면 어떻고 전자우편이면 또 어떻습니까? 어차피 산타할아버지들도 e메일을 쓰는 시대가 온 걸요.

아 참, 이 말을 잊을 뻔했네요.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그냥 책장 가장 높은 칸에 꽂아두세요. 키가 그만큼 자랄 때 쯤이면, 아이들도 이 책을 여러분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테니까요.

▽예수도 몰랐던 크리스마스의 과학/로저 하이필드 지음/이창희 옮김/325쪽 8500원/해냄▽

장석봉(과학서적 전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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