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번역 출간된 에세이집 ‘생명’은 유미리가 운명에 온몸으로 부딪친 선혈의 기록이자, 다큐멘터리를 방불하는 차갑고도 정밀한 회상기다.
지난해, 그는 한 유부남의 아이를 가졌지만 아기 아빠는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중절수술을 고려하던 그에게, 한때의 동거남이자 친한 친구인 연극 연출가 히가시 유타카의 암 발견 소식이 들려왔다.
“유타카를 꼭 살리고 싶었다. 한 생명의 종말을 막고자 한다면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을 박탈할 수 있겠는가? 나는 뱃속의 아기와 암에 걸린 히가시라는 두 존재가 생명이라는 유대로 이어져있는 것 같은 기이한 생각에 휩싸였다. 그리고 생명의 탄생과 재생을 위해 모든 힘을 바쳐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임신과 간병이라는 두 가지 투쟁이 이어졌고, 새 생명은 남았지만 히가시는 갈 길을 갔다.
“릴레이의 바톤 터치처럼 극적인 시간을, 애절한 사랑과 소원을 담아 유미리는 바로 그 정면에서 써냈다.”
▽생명/유미리 지음/김유곤 옮김/320쪽 7000원/문학사상사▽
(세토우치 세키쵸오, 일본 작가)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