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풀展’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의 공식명칭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이다. 인사동 골목 지하에 있는 이곳은 여느 갤러리와는 많이 다르다. 벽면, 바닥, 천장 전체가 여느 전시장처럼 깔끔하게 마감되어 있지 않고 거친 콘크리트 재질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그런가하면 전시장 한가운데 기둥도 있고 쪽방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작품을 전시하기란 작가들에게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지금까지 이곳에서 열렸던 전시들은 공간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한 작품들이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사루비아 다방에서 기획한 첫번째 그룹전으로 참여작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히 전시장 전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배종헌은 투명한 비닐 위에 빨간색 펜으로 선(線) 하나를 휙 그어 그림자가 생기게 전시장 벽에 고정해 놓았다. 이것만으로는 도무지 의도를 알 수 없다. 작가가 주목한 것은 비닐 위에 그어진 선이 아니라 그 선 그림자와 맞닿아 있는 벽면 얼룩과의 관계다. 얼룩과 만난 그림자는 비로소 우리에게 생쥐의 형상을 거의 강제적으로 연상케 한다. 어찌 보면 너무나 터무니없는 관계설정이고 말도 안 되는 장난으로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형상에서 본의 아니게 한번이라도 생쥐의 형상을 연상하고 공감한 관객이라면 그 순간부터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그러면서 (가짜)생쥐 형상과 비닐 위의 (진짜)선 사이를 왔다갔다하게 된다. 다시 말해 실재와 허구의 관계가 모호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사진작가 이경민과 손승현이 참여한 그룹 ‘meta4’의 공동작업은 사진에 있어 재현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유명 사진작가 배병우, 구본창, 히로시 스키모토의 사진을 모방해 작품으로 드러내고 있다. 실재를 재현한 사진 작품을 바탕으로 그것을 또다시 재해석하여 재현하는 방식인 것이다.
구석방에 설치된 김형기의 설치작품엔 보들레르의 시 ‘춤추는 뱀’(le serpent qui danse)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이 시는 프랑스 유명 가수에 의해 샹송으로 불렸고 실제로 스피커를 통해 전시장 안에 울려 퍼진다. 이때 스피커의 울림으로 불꽃은 관능적으로 흔들리고, 그 형상은 사방에 설치된 렌즈를 통과해 벽면에 거꾸로 나타난다. 마치 춤을 추고 있는 뱀처럼….
이 전시의 주제는 한마디로 실재하는 대상과 그것의 재현에 관한 다양한 형식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회화와 사진, 설치라는 장르의 특성과 사루비아다방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이 어우러져 미술의 근원적 의미와 시각적 깨달음에 대한 문제를 살짝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준비되지 않은 관람객은 전시장 계단을 내려서면서부터 전시장의 음침한 분위기와 황당한 디스플레이에 당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전시를 보고 이해하기 위해선 일종의 마음 준비가 필요하다. 새롭지 않고 구태의연한 작품에서 받는 안락한 감상의 즐거움 따윈 버려야 한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작품 너머에 존재하는 작가의 의도와 전략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색다른 즐거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12월29일까지(02-733-0440).
<이준희/ 월간미술 기자dam3@lycos.co.kr >
(주간동아 제2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