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프로가 끝나고도 미진하여 CD 몇장을 찾아 오늘날 제 이메일 아이디로 사용하고 있는 `렛잇비', 그리고 `이매진' `어크로스 디 유니버스' 등 몇곡을 더 듣고나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비틀즈는 요즘 세계적으로도 다시 붐인 모양입니다. 복권 그 이상이지요. 비틀즈의 영미 차트 넘버원에 오른 28곡을 묶어 발매한 `The beatles 1'이 지난해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는 외신은 그런 사실을 잘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차제에 옛날 한국신문들은 비틀즈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보고싶더군요. 66년 비틀즈가 일본공연을 할 당시의 기사 몇편입니다.
6월26일자 조선일보를 보여드립니다. 동경특파원이 작성한 기사로군요.
< 중공에 숙청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 동경엔 비틀즈 광풍이 불고 있다. 오는 28일 하네다의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영국남자 4명 더 비틀즈를 맞아 일본의 비틀즈 팬들이 얼마나 광태를 벌이고 있는가는 각가지 사례에서 볼수 있다-. >
첫부분부터 삐닥합니다. 광풍이니 광태니 하는 표현들이 머리부터 튀어나옵니다. 뒷부분이 예견되지요?. 네, 과연 기사는 광팬들의 `각가지 광태'를 소개합니다.
<....17세 가량의 한 소녀는 "내몸을 마음대로 해도 좋으니 입장권만은 어떻게 마련해달라"고 계원에게 대어들었다고도. >
<....8할은 15,16세의 소녀인데 이들과 50대의 평론가 사이에 논쟁이 붙기조차 했다.
도화선은 지난 5일 TBS(동경방송)의 인기 TV프로 `시사방담'에서 호소가와(정치평론가)씨와 오바마도시에(경제평론가)씨가 "비틀즈란 거지 연예인과 마찬가지다. 그건 떠들고 있는 소녀들을 보면 일목요연하다"고 신랄하게 공격했기 때문. 반향은 대단했다. TBS엔 물론 호소가와 오바마 양씨 자책에도 항의전화가 끊이지 않았고 협박장까지 날아들었다. 그러나 양씨는 "비틀즈인지 베틀즈인지 몰라도 모두가 머리가 부족한 자들"이라고 혹평을 가했다.
그래서 TBS에선 지난 19일 두 평론가와 팬들을 맞붙게 했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정면에 걸려있는 비틀즈의 큰 사진을 보고 이들 17,18세의 팬들은 "와아-"하고 환성을 올렸다.
대결이 시작되자 두 평론가는 독설을 퍼부었다. "비틀즈가 온다고 당신들처럼 떠드는 것은 좋지 않다. 비틀즈팬이란 불결한 존재들이야." 이말에 팬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도대체 비틀즈를 들은 일이 있어요?" "노인들의 횡포요!" 등등. >
<.....이런 반면 우익단체에서는 비틀즈를 `미치광이'로 단정하고 `비틀즈 격퇴작전'을 결행하리라는 소문이다. 대일본애국당의 아까오 당수는 "지금 월남에서는 아시아의 청년들이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는데 이 무슨 미치광이 소동이요? 가만히 둘 수 없다"고 공언했고, 반공정신대의 후꾸다 대장도 `망국적 풍조'로 규정, "좋은 기회다, 저 도깨비같은 불결한 긴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겠소"라고.... >
비틀즈 논쟁에 웬 정치평론가? 웬 경제평론가? 세상만사 아무데나 `평론가' 붙이는게 취미인 일본 TV의 전통은 이렇게 하루이틀된게 아닙니다. 놀라워라, 두 늙은 평론가는 비틀즈를 "골빈 거지"로 규정하고 있네요.
어머나! 저 극우 양아치들의 광태를 보세요. 저들의 웃기는 짜장면은 현해탄 사이를 초월하는군요.
네, 비틀즈의 일본 공연에 맞춰 준동하고 있는 일본 극우파들의 행태는 다른 신문을 통해서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대일본애국당 등 행동우익은 비틀즈 선풍을 망국적 풍조라면서 징병제를 실시하여 군사훈련을 받게 한다면 이같은 풍조는 일지 않을 것이라고 그 책임을 자유방임의 정치풍토에 돌리고 있다....> (6월28일, 중앙일보)
징병제를 실시하자는 대목에서는 더 이상 할말을 잊게 되는군요.
하기사 그때 양아치들은 긴자(銀座) 등 번화가에 "비틀즈를 때려부셔라"는 조악한 포스터까지 붙이고 난리가 아니었답니다.
서기 2001년을 한국에서 맞이하는게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래도 서태지 공연장에 가서 소리지르고 머리 흔들었다고 "저놈들 군대보내야 돼!"라고 소리치는 어른들은 없잖아요.
도대체 우익 양아치들은 왜 저렇게 난리 브루스였을까요.
비틀즈는 양아치들이 가장 증오하는 평화, 양아치들이 가장 혐오하는 사랑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비틀즈는 진보와 대항문화의 강력한 코드였지요. 비틀즈는 권위적이고 곰팡내나는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선동자였지요.
당연히 비틀즈는 기자회견을 할 때도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밝히곤 했습니다. 특히 베트남전은 극력 반대했지요. 다음의 기사도 그 일단을 보여줍니다.
< 일본을 방문중인 비틀즈는 29일 기자회견을 갖고 월남전을 규탄하며 미국은 이에 개입할게 아니라고 "말"로 악을 써 또 법석. 빛깔도 요란한 잠바 차림으로 나타난 이들 가운데 대표격인 존 레넌은 "우린 월남전을 싫어한다.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반대한다는 말밖엔 할게 없다"고 거창하게 나왔다. > (6월30일, 로이터통신 인용 동아일보)
'악을 썼다' '요란한 잠바차림' '거창하게' 식의 유치한 표현을 통신사 기자가 썼는지 신문사 기자가 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비틀즈의 정치적 입장은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멤버 가운데서도 존 레넌은 대표 메신저인 것 같지요? 로이터통신의 기사에도 존 레넌이 대표로 `악을 쓰고' 있대잖아요.
가난한 뱃놈의 아들(존 레넌), 솜장수의 아들(폴 메카트니), 버스운전사의 아들(조지 해리슨), 페인트공의 아들(링고 스타)이었던 그들....
이 대책없는 바퀴벌레들은 60년대를 아름다운 풍뎅이 소리로 가득 채우곤 마침내 1970년 해산합니다.
그때 존 레넌은 이런 말을 남겼답니다.
"꿈은 끝났다. 세상이 예전과 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내 나이 30세가 됐다는 것, 이제 주변에 장발이 많지 않다는 것 뿐이다."
존 레넌이 정말 꿈꾸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요. 그는 비틀즈 해체 이후에도 일본인 아내 오노 요코와 함께 세상에 대해 발언하고 꿈꾸기를 계속했지요. 아마 해체를 하게 되니, 좀 우울하기도 하고 해서, 꿈꾸기가 끝났다고 말했을 겁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좋은 꿈 많이 꾸십시오.
늘보 <문화평론가>letitb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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