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탄신 500주년을 기념한다

  • 입력 2001년 1월 2일 19시 02분


퇴계 이황
퇴계 이황
올해는 16세기 조선시대 사상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던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과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의 탄신 500주년이 되는 해. 퇴계와 남명의 고향인 경북 안동과 경남 산청을 중심으로 두 선현을 추모하고 그 사상을 계승하려는 행사가 활발하게 준비되고 있다.

퇴계 탄신(음력 11월25일생) 기념행사로는 KBS1TV가 이미 새해 첫날 ‘굿모닝 Mr.퇴계’를 방송했다. 오는 10월 퇴계학연구원과 국제퇴계학회가 경북 안동에서 대규모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며 이 행사를 전후로 퇴계 유품 저작 및 영상물 전시회, 유교제례도 마련될 예정. 경북도는 안동 퇴계 생가 옆에 퇴계기념공원을 조성한다.

남명 탄신(음력 6월26일생) 기념행사로는 남명 탄신 500주년 기념사업회를 주축으로 사단법인 남명학연구원, 경상대 남명학연구소, 남명학부산연구원 등이 다양한 연중 행사를 마련한다. 남명을 기리기 위한 경남의 산청지역축제인 남명제(8월18일)를 전후해서 대규모 국제학술회의가 열린다. 남명 일대기 영상물도 제작 상영될 예정.

퇴계와 남명은 조선 건국(1392) 후 성리학이 국가의 사상적 기반으로 자리잡아 가던 당시 낙동강을 경계로 각각 경상좌도와 경상우도에서 독특한 학풍으로 양대 학맥을 형성했다.

퇴계는 깊은 사색과 토론을 통해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과의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辯)을 비롯해 성리학의 심성론(心性論)과 관련된 저술들을 남겼고, 그의 제자들은 조선사회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에 반해 남명은 유가의 실천정신을 중시했던 까닭에 저술을 별로 남기지 않았으며, 남명이 사망한 후 북인을 이끌던 정인홍이 인조반정(1623)으로 광해군과 함께 몰락하는 바람에 세력이 끊겼다. 또 ‘이인좌의 난’(1728)으로 인해 경상우도가 경계 대상이 되면서 남명학파는 세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로 말미암아 퇴계는 기호학파를 형성한 율곡 이이(栗谷 李珥)와 함께 꾸준히 추앙받아 왔으나, 남명은 최근에 와서야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다.

퇴계는 중국 성리학의 우주론을 인간 심성의 문제와 연관시켜 심화했다. 오늘날 그의 사상은 일본 중국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인격 수양과 도덕적 행위를 통해 사회와 자연과의 관계를 정립하려는 많은 학자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고려대 윤사순 교수는 퇴계 사상에 대해 “인간 본성을 자각함으로써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정당한 가치와 권위를 확립하려는 인본주의에 지향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조선 성리학의 정통으로 인정받아 온 퇴계의 성리학과 달리, 남명의 철학은 유학 뿐 아니라 노장사상이나 불교 등에도 개방적이었고 이론적 천착보다는 유학 이념의 실천을 중시했다.

대진대 권인호 교수는 “남명학파는 국가철학화돼 버린 성리학의 관념성을 극복하고, 현실비판과 경세제민 사상을 토대로 재야 산림과 조정에서 적극적으로 그 사상을 실천했다”고 말한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무너진 후 세기말 사상계의 혼란을 거쳐 다시 인류의 사상적 지표를 만들어 나가야 할 새 세기 초에 16세기 조선의 기둥이 됐던 두 선비의 사상이 어떻게 재조명되고 계승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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