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동아닷컴이포터 김수영의 서태지 공연 관람기(하)

  • 입력 2001년 1월 3일 12시 49분


#5

무대 한쪽, 예쁜 하늘색 조그만 부스. 앞머리를 넘기고 나타난 오늘의 '영웅'은 기타를 둘러매고 '슬픈 아픔'을 부른다. 한동안 그가 없다는 것이 가장 슬픈 아픔이었던 나와 다른 팬들은 모두 "태지 안에 하나되어" 불꽃을 밝혔고, 그도 불꽃을 밝혔다.

라이터에서 나는 석유냄새조차 신성하게 느껴지는가 싶더니 "아이들의 눈으로"가 이어진다. 아무런 위로 없이 시간과 이 시대의 속도감을 이겨온, 서태지가 데뷔한 9년 전의 '아이들' 팬은 지금 '울트라매니아'로 성장해 영롱한 피아노 선율을 따라 다함께 "나에게 꿈이 있어요"하며 노래를 부른다.

#6

"여러분들이랑 다시 만나 콘서트해서 너무 행복해요. 여러분들이 저희에게 멋진 모습 보여줘서 이제 한을 풀 것 같아요". 서태지의 말에 옆에 앉은 누군가가 눈물을 훔쳐낸다. 울다말고 "사랑해요!"하고 외친다, 아니 울부짖는다.

"서태지 핌프록 표절"이라는 타이틀이 쓰인 거대한 신문기사가 올라가고 서태지는 그것을 손가락질하며 웃는다. 그것을 북 뜯어 팬들에게 나눠주자 신문기사는 순식간에 조각나고 다같이 함성을 지른다.

서태지와 아이들 4집이 발매되면서 시작된 '컴백 홈'의 표절시비, 공연윤리위원회와의 마찰 등 이른바 '서태지 죽이기'에 당당히 맞서면서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제를 없애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던 그의 모습은 '청소년들의 대통령'이란 별칭에 걸맞았다. 그는 당당한 웃음을 띈 채 기타를 직접 메고 다시 한번 필승을 열창했다.

#7

대형화면에 "11년 전이었어.."라는 글자가 보여지며 비를 맞는 한 소녀가 등장한다. 재깍거리는 시계의 초침. 뚜벅뚜벅 남자의 발소리. 공포에 질린 소녀, 문을 여는 남자.

소녀는 도망가려 하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남자에게 머리채가 잡히고 끌려간다. "아빠!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께요!" 소녀의 얼굴은 피로 물든다. 남자의 허리띠가 풀리고, 소녀는 기어서 도망치려 하지만...

이 때 조명이 켜지며 무대 양쪽엔 남자, 여자악마의 흉상이 서 있고, 커다란 나방같은 악마의 조형이 날개를 편다. 'ㄱ나니?'를 부르기 위해 창 모양의 마이크대를 잡은 서태지는 지하어둠의 절대지존, 마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소녀의 공포에 질린 모습이 화면 가득히 비쳐지면서 그는 노래한다. "가끔 때때로 날 묶고/절대 복종을 다 토해 낼 듯한/내 두뇌를 넘어선 두려움이/내 피로 고통을 뿜어 올렸어".

남자의 뒤틀린 웃는 모습이 영상으로 흐르며 노래가 이어진다. "웃네 만족한 듯 무척 즐겁게 넌 웃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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