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자 세상]글자의 혼돈

  • 입력 2001년 1월 4일 19시 10분


분주했던 연말 뒤의 새해 연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싶다고 조르는 애들과 함께 정인균과장(34·서울 노원구 하계동)은 털모자를 쓰고 ‘동네 한바퀴’에 나섰다. 해가 바뀌어 상지는 8세, 성주는 6세. 누나에게 절대 지기 싫어하는 남동생 성주가 훨씬 잘 탄다. 혼자 앞서가며 뽐내다 아빠 손을 잡고 다정히 걸어가는 누나가 샘났던지 금세 쫓아와 아빠 손을 낚아채는 성주. 정과장은 남매의 다툼이 흐뭇하기만 했다.

골목 어귀 전봇대에 붙은 전단을 보고 셋이 멈춰 섰다.

△색깔:짙은 갈색

△특징:코에 붉은 반점이 있음

△키:20cm

(중략)찾아주신 분께 후사함

“누가 강아지를 잃어버렸나 봐. 묶어 놓았으면 안 잃어버렸을 텐데….”

상지가 말했다. 전단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오물거리던 성주가 한마디했다.

“누가 강아지를 발로 찼대.”

무슨 말인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해진 정과장. 전단 윗부분에 큰 글자로 쓰인 제목을 보고 ‘깨우침’을 얻었다. ‘강아지를 찾(찼)습니다.’

<김경달기자>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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