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날 한 남자가 슈이치가 놓쳐버린 노래 가사를 주우면서 운명적인 만남은 시작된다. 그러나 슈이치의 가사를 들여다 본 그 자의 한 마디는 '재능 제로군. 때려치워'.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의 비수 같은 한마디에 절치부심하는 슈이치는 그가 유명한 소설가 유키 에이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
<그래비테이션>은 일본 '소니 매거진'에서 발행되는 <너와나>(きみとぼく)라는 잡지에 95년부터 연재되고 있는 작품이다. 노골적인 묘사는 비교적 자제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엄연한 야오이물(동성애)인데다 스토리도 뻔하다. 순진하고 재능 있는 소녀가 부와 명성을 지닌 냉혈미남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천하의 바람둥이인 남자는 이상스럽게도 그 소녀에게만은 맥을 못 추고 반해 버린다는 흔한 하이틴 로맨스 플롯에서 소녀만 살짝 소년으로 바꿔 놨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비테이션>은 재미있다. 아마추어 뮤지션이던 슈이치가 대형 기획사에 스카우트되어 스타로 성공하는 드라마틱한 과정과 독특한 캐릭터들의 요절복통할 개그가 '동성애'라는 터부를 탄탄히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끼리의 사랑이라 이상스럽기도 하련만 의외로 두 남자의 연인으로서 갈등과 고민, 성장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함께 울고 웃게 되고 만다. 결코 평범한 연애담은 아니지만 굳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밝음과 강함을 지니고 있는 만화다.
'야오이'라는 만화 장르는 이제 만화팬 여부를 떠나 그다지 낯선 단어가 아니다. 신문은 좋아하는 연예인 팬픽에 열 올리는 청소년들을 문제시하고 있지만 그 시시비비를 떠나 어느새 야오이는 주류 문화에 편승해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상대방이 동성이어도 상관 없다는 것은 개개인이 판단할 몫이 아닐까.
김지혜 <동아닷컴 객원기자> lemonjam@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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