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옛 연인과 한 약속을 위해 대교 중간에 서 있다. 만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녀는 마냥 서 있다.
“왜 이제야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을까.”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 그녀는 다시 혼잣말한다.
“어느 한순간도 꽃처럼 진실하게 사랑한 적이 없다. 꽃처럼 시든 이 나이에야 그 사실을 알다니.”
이런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그룹 ‘동물원’이 4년만에 발표한 새음반 ‘동화(冬畵)’는 그런 음반이다. ‘기억속으로’ ‘다시 널 부르지 않도록’ ‘금지된 꿈’ ‘너에게 감사해’ 등 13곡이 하나의 스토리 구조를 갖고 청춘을 훌쩍 넘긴 한 여자의 애타는 그리움을 그린다.
단아한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 연주, 정갈한 보컬이 여자 첫눈 꽃 눈물 등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짙은 회색빛 겨울 오후, 음반을 듣다보면 아릿한 그리움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난다.
1988년 데뷔한 ‘동물원’은 ‘변해가네’ ‘사랑하겠어’ ‘시청앞 지하철역에서’ 등으로 번잡한 도시생활속에서 잊고 사는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온 그룹. 여덟 번째인 새음반도 ‘옛 연인’이라는 컨셉을 내세웠다. 지난해 12월 23차례의 공연이 거의 매진을 기록한 것도 순수를 고집해온 ‘동물원’에 20, 30대 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음반에는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김창기가 빠지고 유준열 배영길 박기영 등 셋이 작곡 작사와 노래를 했다. 김창기는 개인 사정으로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유준열은 무역회사 부장으로 녹음은 밤에 했다. 배영길 박기영은 ‘전업 가수’다.
이들은 음악처럼 낭만과 긍정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 박기영은 “서로 성격이 다르지만 세상은 따뜻하다고 보는 세계관은 일치한다”고 말한다.
타이틀곡은 맨 마지막에 수록한 ‘너에게 감사해’다. 다리 위의 여인이 옛 연인을 그리워하던 끝에 잠시나마 내곁에 있어준 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다. ‘동물원’은 올해도 소극장 콘서트 외에 ‘기차여행’ 등의 다양한 음악 이벤트를 마련할 계획이다.
<허엽기자>he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