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精文硏 정구복교수 기존 학설 반론]"김부식은 자주적-진보적 지

  • 입력 2001년 1월 14일 19시 59분


“김부식과 ‘삼국사기’가 보수적 사대주의적이라는 단재 신채호의 평가는 수정되어야 한다. 당시의 상황에서 보면 김부식은 오히려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1월의 문화인물이자 ‘삼국사기’(1145)를 펴낸 고려시대의 문신 김부식(1075∼1151). 그가 일반적으로 알려져온 사대주의자 보수주의자가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되어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 대표 주자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정구복교수(한국사). 그는 19일 오후 1시반 경기 성남시 정신문화연구원에서 열리는 ‘1월의 문화인물 선정 기념 학술대회’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발표할 예정이다.

김부식이 사대주의자 보수주의자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민족주의 사학자 단재 신채호에 의해서. 단재는 묘청의 난을 1000년래 제1대 사건이라고 높이 평가한 반면 김부식이 이 난을 진압한 후 자주적 성향을 꺾기 위해 ‘삼국사기’를 편찬했다고 보면서 ‘삼국사기’를 사대적 역사서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정교수는 “이러한 평가가 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선입견으로 작용해왔다”면서 “단재의 견해는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교수는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로 보는 통설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김부식이 중국 문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려 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이를 사대주의로 보기보다는 보편적인 세계 문화를 흡수하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고 평가한다.

정교수는 “자국 중심의 편협한 역사를 벗어나 세계사적 관점에서 평가하려한 ‘삼국사기’는 훨씬 더 선진적이었다. 따라서 ‘삼국사기’는 사대적 역사서라기 보다는 진보적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교수는 또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이 정치의 완전한 자치를 생각했고 중국 침입에 대한 적극적인 항전을 높이 평가한 점으로 미루어 진보적인 사관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삼국사기’ 권 21 고구려본기, 권 44 열전 4(을지문덕)의 내용이 단적인 예.

정교수의 이같은 견해는 학계의 판에 박힌 시각을 교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대 박종기교수(고려사) 역시 “김부식이 지금까지의 평가대로 보수적이고 사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박교수는 “단재의 눈에 의존해 중세를 보아선 안된다. 중세시대의 역사적 과제는 외세와 싸우는 것만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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