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중순 비틀스 해산 30주년에 맞춰 출간된 이 책은 미국,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일본 등 전세계 10여 개국에서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넉달째 베스트셀러 랭킹 수위권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고, 문화적 자존심이 강하기로 소문난 프랑스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중이다.
단행본의 두 배가 넘는 크기, 368쪽이나 되는 두툼한 분량, 6∼7만원을 호가하는 가격 등 판매 상의 결점을 생각한다면 이 책의 열풍은 남다른 것이다. 그리고 이미 400종이 넘는 비틀스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비틀스 앤솔로지’는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등 비틀스 멤버 4명 각자의 인터뷰로 이뤄진 일종의 자서전이다. 밴드가 결성된 1960년부터 1970년 해체될 때까지의 앨범 작업과 공연, 각종 일화에 대한 진솔한 기억이 담겨져 있다. 1980년 열혈 팬의 총에 맞아 불운하게 세상을 뜬 존 레논의 경우에는 생전의 여러 인터뷰를 재구성해 실었다.
이들의 육성 못지 않게 돋보이는 것이 1000장이 넘는 생생한 사진들이다. 데뷔 초기 보이밴드 시절 영국의 지하 클럽에서 연주하던 앳된 모습부터 활동 기간 중 서로에게 보낸 쪽지들, 앨범 계약서 등 비틀스에 관한 거의 모든 시각자료가 실렸다. 완전 나체로 부부가 함께 찍은 존 레논의 사진은 미망인인 오노 요코의 개인 앨범에서 꺼낸 것이다. 모든 작업은 비틀스가 아닌 제3자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것이다.
‘비틀스 앤솔로지’가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틀스란 말만으로도 무조건 반사 작용을 보이는 ‘비틀스 마니아’의 건재함 때문인가? 음악평론가 송기철씨는 “이 책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공식적인 ‘비틀스의 정전(正典)’이란 점 뿐 아니라 몇 해 전부터 조용히 불고 있는 비틀스 음악의 새로운 붐에 따른 동반상승 효과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2월8일 존 레넌의 사망 20주기를 맞은 것과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히트곡 모음 앨범 ‘넘버1’도 비틀스 자서전의 흥행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이 음반은 발매 5주만에 세계적으로 1800만장이 팔렸고, 세계 35개국에서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5만장이 나가면 ‘대박’으로 치는 우리나라 팝시장에서도 이 음반은 25만장이 넘게 판매됐다.
존 레넌의 죽음으로 재현이 불가능해진 ‘비틀스의 신화’에 대한 세계인들의 향수도 책 판매량에 크게 일조했다. 프랑스의 유력지 르 몽드(2000.10.8일자)는 이 책에 대한 서평 제목을 “비틀스에 대한 ‘전지구적인 노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기계”라고 달았다.
사실 이 책은 1995년부터 주도면밀하게 추진된 ‘비틀스 앤솔로지’ 프로젝트의 3탄으로 만들어진 기획상품의 성격이 강하다. 1탄이 1995년 비틀스의 노래와 일화에 대한 각 멤버의 인터뷰로 이뤄진 6시간짜리 동명 다큐멘터리였다면, 2탄은 비숫한 시기에 ‘프리 애즈 버드’ 등 미발표 연습곡까지 담아 전세계에 발매한 같은 이름의 3부작 전집 음반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세계 100여개국에 방송됐고 수백만 개의 비디오가 팔렸으며, 앨범은 4500만장이란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국내 출판계도 ‘비틀스 엔솔로지’ 번역 출간에 눈독을 들이고 있지만 지금까지 입맛만 다시는 형국이다. 저작권 대행사인 에릭양에이전시의 양원석 대표는 “비틀스 저작권을 갖고 있는 애플레코드가 책 내용을 줄여 출간하는 축약본을 일체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이탈리아에 지정한 인쇄소에서 제작해 수입하도록 하는 등 계약조건이 까다로워 쉽게 계약이 이뤄질 것 같지 않다”고 전했다.
출판사 관계자들은 이럴 경우 책 가격이 10만원 정도나 되므로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말 교보문고가 직수입한 ‘비틀스 앤솔로지’ 50권이 금새 동이 났으며 국내에도 아직 비틀즈의 영향력이 대단한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자서전이 번역 출간되면 상당한 호응과 함께 부수적인 ‘비틀즈 붐’도 기대되고 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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