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함께 모여 조상과 어른들에게 인사드리고 푸짐하게 차린 상에 둘러앉아 정겹게 덕담을 나누는 설날이 돌아온다.
‘조율이시(棗栗梨枾)’, ‘홍동백서(紅東白西)’, ‘생동숙서(生東熟西)’, ‘어동육서(魚東肉西)’…. 차례상을 차리는 격식도 까다롭고 복잡하다.
‘실속파’ 주부들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메뉴에서 벗어나 뭔가 색다른 상차림이 없을까 고민한다.
요리에 걸맞은 상차림법을 연구하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노영희씨(39)가 요리 무크지 ‘맛있는 음식, 행복한 식탁’(동아일보사 출판)을 통해 새로운 감각의 ‘명절 요리’를 소개했다.
“가족이 모여서 음식을 나눠먹는 것은 삶의 즐거움 중 하나죠. 그렇지만 명절 때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차려놓더라도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 음식이 많고 또 남아서 버린다면 요리하는 사람만 힘들게 되죠.”
그는 가족들이 먹는 음식을 전채, 주요리, 후식 등으로 분류해 4∼8품으로 간소화할 것을 권한다. 물론 차례를 지내는 집안의 경우 탕과 적 등 제수(祭需)의 기본 음식은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
그가 권하는 전채로는 △묵무침 △배와 다시마말이 냉채 △녹두부침 등이다. 주요리는 김치 등 간단한 밑반찬에 갈비찜, 떡만두국을 내놓는다. 후식으로는 궁중요리인 두텁떡을 손으로 빚어 식혜나 수정과와 곁들어 낸다.
노씨는 “설에는 기름진 음식이 많기 때문에 깔끔한 냉채가 잘 어울려요. 녹두부침은 1인당 1개씩 먹을 수 있도록 작게 만들면 냉동실에 보관해두었다 먹고 싶을 때마다 데워내면 낭비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만두도 1인당 한끼에 4, 5개씩 요량해 연휴기간에 처분할 분량만 만들어 낼 것을 권유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요리맛을 더해줄 수 있는 ‘분위기 연출’을 강조한다.
“겨울철에 나는 모과와 유자를 목판그릇에 담아 마루 한구석에 놓아두면 향긋한 방향제 역할을 하죠.
평면상에는 와인잔을 놓고 전통술이나 포도주를 따라 마시면 자연스럽게 ‘건배’ 제창과 함께 덕담을 나누게 될 거예요.”
노씨는 이 책에서 명절을 포함해 생일, 기념일, 야외 바비큐, 뷔페 등 18가지 상차림의 비법과 요리법을 소개했다. 이외에 그릇 세팅, 식탁 꽃장식, 냅킨 접는 법, 식탁보 고르는 법 등도 참고할 만하다.
그는 “음식 차리는 문제 때문에 손님 초대를 꺼리는 경우가 많지요. 이제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개성 있는 요리 한두 가지, 멋진 식탁 장식 등으로 식탁표정을 바꾸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노씨는 월간 여성잡지 요리담당 기자로 활동하다 93년부터 요리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노영희씨가 권하는 요리법
▽배 다시마말이 냉채(8인분)
△재료〓염장 다시마 200g, 배 1개, 굴 400g, 초고추장 △만드는 법〓①다시마 짠맛 빼기(다시마를 찬물에 여러 번 담가 주물러 씻은 뒤 끊는 물에 살짝 데쳐 물기를 뺀다) ②굴씻기(굴을 엷은 소금물에 씻은 뒤 물기를 뺀다) ③배 채썰기 ④다시마로 배 말기(다시마를 10㎝ 길이로 잘라서 배를 놓고 돌돌 만다) ⑤그릇에 담아 내고 옆에 초고추장을 둔다
▽두텁떡(30개분)
▽재료〓찹쌀가루 10컵, 진간장 3큰술, 꿀 ½컵, 고물(푸른 팥 5컵, 진간장 1½큰술, 설탕 ½컵, 계핏가루 약간), 속(고물 1컵, 유자청 다진 것 2큰술, 잣과 호두 굵게 썬 것 2큰술, 밤 잘게 썬 것 4큰술, 꿀 2큰술)
▽만드는 법〓①푸른 팥 거피해서 찌기(팥을 반으로 쪼개 6시간 동안 물에 불렸다가 껍질을 벗긴다. 물을 뺀 다음 찜통에 30분 정도 찐다) ②팥고물 만들기(팥이 뜨거울 때 절구 등으로 빻거나 갈아 체에 내린 다음 진간장, 설탕, 계핏가루를 섞는다. 팬에 식용유를 약간 두른 뒤 약한 불에서 볶아 다시 체에 내려 식힌다. 이 상태로 냉동실에 보관해둔다) ③찹쌀가루 양념하기(찹쌀가루에 진간장과 꿀을 넣고 손으로 비벼 고루 섞은 후 체에 내린다) ④속 만들기(고물에 유자청, 밤, 호두, 꿀 등을 섞은 다음 대추 크기로 만든다) ⑤떡 안쳐서 찌기(찜통에 젖은 면보자기를 깔고 고물을 얇게 깐 다음 찹쌀가루 2큰술을 떠서 놓고 가운데 속을 집어넣고 다시 위에 찹쌀가루 2큰술을 덮는다. 띄엄띄엄 같은 방법으로 여러 개 만들어 고물을 덮는다. 우묵하게 들어간 곳에 다시 쌀가루―속―쌀가루를 놓고 다시 고물을 덮어서 김이 오른 찜통에 얹어 30분 정도 쪄낸 뒤 식힌다)
<박희제기자>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