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브로디를 러시아 대통령으로.”
마브로디는 러시아를 뒤흔든 피라미드 금융사기 펀드의 설립자이다. 러시아인들은 마브로디가 만든 MMM펀드가 파산한 후에도, 마브로디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러시아에 미래가 있다고 믿었다. 체제전환이 러시아인들을 얼마나 혼란에 빠뜨렸는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한때 세계 최강국이었던 러시아가 공산주의를 포기하면서 겪어야 했던 최초의 고통은 가격자유화. 생필품 가격의 정부 통제가 풀리면서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한달 수입이 5달러도 안되는 수준까지 떨어진 러시아인들에게 살인적인 물가고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당신들은 오직 돈만을 위해 살았지만 우리는 이상을 위해 살아왔다. 그런 우리가 지금 왜 이렇게 어려운 생활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러시아인들이 미국을 향해 부르짖은 이 말은 절규에 가까웠다.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35세의 가이다르를 수장으로 하는 경제팀이 재정과 금융긴축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려 했지만 불발로 그쳤다. 워낙 경제 구조가 취약한데다 반대세력의 압력 또한 거셌기 때문이다.
위기에서 인간의 반응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대부분이 갑자기 바뀌어 버린 세상에 어리둥절하는 동안, 또 다른 부류는 민첩하게 움직였다. 시류변화에 가장 잘 적응했던 집단은 국유재산을 불하받아 단기에 재벌 반열에 올라선 사람들. 고르바초프 집권 당시 소규모 조합수준에 머물던 기업가들이 석유 철강 등의 국영기업을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워갔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기회를 엿본 것은 외국인투자자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계 투자은행 CSFB는 이제 갓 태어난 러시아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1994년초 전체 주식의 80%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을 키워갔다.
옛소련에 대한 향수와 현실이 맞부딪친 최대의 격전장은 1996년 대통령 선거. 자본주의에 대한 러시아인의 환상이 깨진 상태에서 어려운 선거를 치뤄야만 했던 옐친의 적수는 공산당 당수 쥬가노프였다. 선거 결과는 옐친의 승리. 어려운 경제상황과 깨어진 꿈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인들은 자본주의에서 미래를 찾은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러시아 관련 서적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러시아 혁명에 관한 책일 것이다. 러시아 혁명이 전제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바뀌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라면, 이제는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환하면서 어떤 혼란을 겪었는지도 또 하나의 관심사일 수 밖에 없다. ‘러시아의 선택’은 이것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저널리즘의 바탕에서.
(대우증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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