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배달 우리차문화원 이연자원장이 어느 종가집을 찾아 내림으로 내려온 그 집의 전통음식, 제례와 각종 예법등에 대해 묻자
한 어느 종부(宗婦)의 얘기이다. 종부는 무엇인고 종가는 무엇인가. 종가(宗家)란 한 씨족의 큰집(종손)으로 이어온 집안을 이름이다.<토지>의 윤씨부인이나 <혼불>의 청암부인등이 우리가 책에서 안 전형적인 종부일 터.그들의 한살매(일생)은 어떠한가. '한 집안의 역사'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전통을 지켜온 그들의 세월의 무게는 또 얼마나 클 것인가. 그들이 지키고자 한 문화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민족 전래의 명절 설을 앞두고 나온 이 책 <천년의 삶으로 이어온 종가 이야기>(이연자 지음/컬처라인 펴냄/312쪽 1만8000원)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문 종가 17곳을, 저자가 2년여동안 쏟은 엄청난 발품과 정성 하나만으로 밝혀낸 우리 조상들의 전반적인 문화를 집대성한 것이다.
우리의 주부들은 '명절 증후군'에 시달린다고 한다. 온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드리는 설이나 추석에 여자들의 스트레스가 만만찮다고 한다. 그 많은 음식준비, 끝이 없는 설거지,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식구들과의 은근한 신경전, 그 뒤편에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서 못벗어난 남정네들이 고유한 문화인양 고스톱에만 열중하고….
그런데 조선조 양반집들은 차례를 어떻게 지냈을까. 이 책에서 증언하는 차례예절은 차라리 파격적이다. "제사음식은 그냥 차와 과일 한 접시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 사람은 4백년전 예학의 일인자였던 사계 김장생선생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허례허식이 아닌 정성이라는 것. 젊은이들은 제사의 의미를 알려고도 하지않고 또 모른다. 그저 명절연휴만 되면 해외로 놀러갈 궁리이다. '자손된 도리를 하는 하늘의 이치가 제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장소가 어디가 됐든 정성스레 상을 차린다면 굳이 꺼릴 이유가 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의 전통문화가 결코 고리타분하고 복잡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멋과 낭만이 넘치는 차문화가 있었고, 출생이나 성인의례 그리고 혼례문화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맛의 문화(내림음식)가 넘쳤다. 저자가 전통문화 보급에 앞장서는 것은 그 까닭이다. 동방예의지국, 천년을 이어온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의 단절은 서글픈 일이다. 아니 어쩌면 '나라망할' 일인지도 모른다.
명문종가들의 고택안에서 아름답게 숨쉬고 있는 다양한 문화을 애써 재현하는 것은,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본받자는 뜻이 아닐게다. 어찌보면 고루해 보이는 예(禮)를 21세기 디지털시대와 각 가정의 환경에 맞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일 것이다. 우리 핏속에는 단군할아버지의 피가 면면히 흐르므로.
갈피갈피에 맞춤맞게 편집한 200여컷의 컬러사진들을 보라. 사뭇 경건함이 느껴진다.
이 책에 소개된 명가 17곳은 다음과 같다.
강릉 전주이씨 종가 선교장, 안동 하회마을 풍산류씨 종가 양진당, 경주 양동마을 월성손씨 손소종가, 해남 연동마을 해남윤씨종가 녹우당, 안동 군자마을 광산김씨 예안파종가, 봉화 닭실마을 안동권씨 권법종가, 영양 두들마을 재령이씨 종가, 아산 외암마을 예안이씨 문정공파 종가, 남원 호곡마을 죽산박씨 충현공파 종가, 논산 고정마을 광산김씨 사계 김장생종가, 논산 교촌마을 파평윤씨 노종파 윤증종가, 안동 운곡동 영천이씨 농암 이현보종가, 정읍 평사마을 강진김씨 태인파 종가, 남해 덕천마을 밀양박씨 연안공파 하천 종가, 영광 입석마을 영월신씨 종가, 거창 강천마을 초계정시 동계 정온종가,경주 이조마을 경주최씨 잠와 최진립종가.
최영록<동아닷컴 기자>yr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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