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主流) 자리를 넘보는 처가파
요즘 본가보다는 처가에서 명절을 느긋하게 보내는 ‘처가파’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6년째 처가살이를 하고 있는 장남 이모씨(34)도 처가파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설 명절 때만 되면 홀어머니에 무남독녀인 부인 김모씨(30)와 신경전을 벌여오다 최근 ‘절충안’으로 명절을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다.
그동안 이씨는 “명절 전날에는 본가에서 음식준비를 한 뒤 차례까지 지내고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내는 “그럼 친정집 차례는 누가 지내느냐”고 맞섰다. 결국 이씨는 설 전날은 본가에서 음식을 푸짐하게 만들어 밤늦게 처가로 돌아오고 설날은처가에서 새벽에 차례를 지낸 뒤 본가로 직행하기로 결정했다. 아내도 이에 동의했다.
경기 안양시에 사는 이모씨(60·여)는 명절 당일 출가한 세딸 가족들과 외아들 부부를 ‘맞교환’하는 일을 몇 년째 계속하고 있다. 차례가 끝나기 무섭게 아들은 처가로 보내고 대신 딸들이 외손자들을 이끌고 친정집을 찾아오는 것이다.
◇'낯선곳에서 아침을'엔조이족
연휴설연휴를 맞아 가족과 여행에 나서는 ‘엔조이족’이 점차 늘어나면서 명절풍속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
최근 서울에서 울산으로 직장을 옮긴 최모씨(45)는 이번 명절을 본가가 아닌 설경이 펼쳐진 관광지인 전북 무주리조트에서 보내기로 했다.
장남인 최씨는 “부모님의 양해를 얻어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했고 콘도미니엄에서 조촐하게 차례를 지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레저전문사이트인 넷포츠(www.netports.co.kr)에서 일하는 웹마스터 정복실씨(32)는 “스키리프트와 콘도미니엄 가격을 20∼50% 할인해주고 있기 때문에 명절 전후의 콘도 예약상품은 이미 동이 난 상태”라며 “넷포츠 사이트의 예약을 통해서만 스키장을 찾는 이들이 명절 연휴기간중 하루 1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메리어트 르네상스 신라 힐튼 아미가 등 특급호텔들에는 설연휴기간동안 방을 예약한 가족단위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다. 르네상스호텔 김유진 계장(35·판촉부)은 “전통적인 비수기임에도 숙박패키지 상품이 전년에 비해 70%정도 예약이 늘었다”면서 “특히나 올해는 설이 1월에 있어 겨울 휴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사람들의 수요가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이버차례’ 등 다양한 실속파
인터넷 채팅을 통해 전국에 흩어진 가족들과 간단히 인사를 한 뒤 동화상으로 어른에게 세배를 드리는 ‘사이버 명절족’도 등장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사는 고담호씨(26·프리챌 웹디자이너)는 가족 홈페이지인 ‘평창동 고가네’를 통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30여명의 가족들과 설 인사를 대신하게 된다.
고씨는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있는 친척들이 인터넷을 통해 안부를 묻기도 하고 ‘소모임’ 일정을 교환하면서 알찬 설 계획을 짜고 있다”고 자랑했다.
명절 음식 만드는 것을 힘에 겨워하는 주부들 덕분에 차례상 대행업체들도 대목을 보고 있다. ‘푸드투고’ ‘가례원’ 등 전국 10여개의 차례상 대행업체들의 올 매출량은 지난해에 비해 두배 이상 껑충 뛰었다.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자녀들에게 살아 있는 교육을 시키는 ‘훈육파’
이광룡씨(43·인천 연수구 연수동) 부부는 이번 설 연휴기간중 1박2일간 장애인시설인 ‘라파엘의 집’(경기 여주군)을 자녀들과 함께 찾아 봉사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충북 음성 꽃동네 등 봉사 시설에는 설 연휴를 보람 있게 보내고 싶어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몰리고 있다.
<박희제기자>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