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은 새로운 세기를 맞아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에 속한 유일한 철학자다.
아마도 그의 철학에 대한 가장 위트있는 평가는 철학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종결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당혹감과 논쟁거리들만 남겨 앞으로 수백년간 철학을 필독서로 남겨두는 데 그치고 말았다는 평일 것이다.
철학의 모든 문제를 풀었다는 이 오만한 선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의 대표작을 읽을 것이 아니라, 어쩌면 ‘천재의 의무’라는 제목의 전기를 읽는 데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인정하듯 그는 천재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그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천재였는지 모른다. 그의 천재성은 그 자신을 완전히 사로 잡는 것이었다. 천재가 아닌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진정한 재능이 무엇인지를 확신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자살충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재능은 철학적 충동으로 나타났고, 천재의 의무란 그에게 주어진 가장 강한 충동을 완전히 따름으로써 위대한 철학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한동안 그는 이러한 의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었던 때였다. 더 이상 따라야 할 충동이 없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오류를 깨닫게 되면서 그는 다시 철학적 충동에 사로잡히게 됐다. 참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이 운명은 죽을 때까지 그를 따라다녔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 이전에 엔지니어였고 철학자가 된 후에도 군인, 교사, 정원사, 건축가 등 많은 직업에 손을 댔다. 가톨릭 사제나 교향악지휘자가 될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이처럼 외면적으로는 고작 아마추어 철학자로 보이지만, 그의 내면으로 찾아온 철학의 문제들은 마치 고문과도 같이 그의 삶을 몰아갔으며 그 결과는 오늘날 가장 난해하고 논란 많은 철학으로 남아 있다.
8년 전 비트겐슈타인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준비하던 나는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이 책의 원서를 접하게 되었다. 이미 비트겐슈타인의 전기를 여럿 읽었던 터라 이 책의 출현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여느 전기와는 너무도 다르게 인간 비트겐슈타인의 내면세계를 세련된 문체와 풍부한 내용으로 충실하게 담아낸 이 책에 빠져들었다.
단순한 지적호기심과 인문교양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면서 전기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이 멋진 책이 이제 우리말로 번역돼 독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병철(부산외국어대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