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질병이야기]'인간 광우병' 에이즈보다 치명적

  • 입력 2001년 1월 30일 18시 53분


지난주 국내에서 60대 크로이츠펠트 야콥병(CJD) 환자가 ‘광우병 환자’로 오인되는 소동이 일어났다. 국내에서 ‘광록병’에 걸린 캐다다 사슴의 녹용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파장이 컸다.

때 맞춰 국립보건원은 CJD와 함께 광우병이 사람에게 전염된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vCJD)을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고 농림부는 가축뼈 분말 사료를 소와 양 등 되새김질을 하는 가축 사료로 쓰지 못하도록 하는 등 광우병 예방 대책을 내놓았다.

왜 이토록 난리법썩일까? 전문가들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vCJD가 전 세계로 확산될 우려가 있고 21세기에 가장 위험한 전염병이 될 수 있다고 지난해 말 경고했다.

감염학자들은 ‘천형’으로 알려진 에이즈는 몇 년안에 정복할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에 현재로운 아무런 대책이 없는 vCJD를 더 위험한 병으로 여기고 있다.

▽프리온이 만드는 병〓사람에게서 나타나는 CJD와 소의 광우병은 모두 ‘프리온’이란 희한한 단백질 때문에 뇌가 스펀지 모양으로 구멍나는 병이다.

식인종이 어느날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고 사지가 마비돼 숨지는 ‘쿠루병’, 잠을 못들며 숨지는 ‘유전적 치명불면증’ 등도 프리온이 일으키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들 병을 통틀어 ‘프리온 질환’‘스펀지 모양 뇌질환’이라고 부른다.

▽이상한 단백질〓프리온은 단백질(Protein)과 비리온(Virion·바이러스 입자)의 합성어. 마치 바이러스처럼 전염력을 가진 단백질 입자란 뜻.

사실 10여년 전 의학적 상식으로는 프리온이 병을 일으킨다는 것은 한 마디로 넌센스였다. 이전까지 모든 전염병은 유전정보인 핵산(DNA나 RNA)을 가진 생명체가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

그러나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립대(UCSF) 신경과의 스탠리 프루시너박사는 프리온이 CJD 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등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고 이 공로로 1997년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지난해 UCSF의 조나단 바이스만박사는 효모 세포에 프리온을 주입한 다음 프리온이 끊임없이 증식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질병 프리온〓프리온은 정상인 뿐 아니라 모든 동물의 신체 조직에서 발견되는 단백질. 보통 때엔 얌전하게 별 해를 끼치지 않고 곧바로 분해돼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프리온의 모양이 바뀌어 독성을 지닌 채 분해되지 않고 뇌에 쌓여 신경세포를 파괴하면 환자를 치명적 상태로 만든다. ‘질병 프리온’은 정상 프리온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가며 섭씨 100도 이상 가열하는 일반적 살균법으로 죽지 않는다.

왜 프리온의 모양이 바뀌는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과학자들은 유전자 돌연변이를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간이 빚어낸 광우병〓프리온은 다른 종(種)의 동물로 옮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에서 80년대초 초식동물인 소에게 양의 뼈나 근육 등을 분쇄한 고기 사료와 동물사료를 먹이면서 변종 프리온이 종을 넘어 전염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양에게서만 나타나는 ‘스크래피’라는 병이 소에겐 광우병, 사슴에겐 광록병, 사람에겐 vCDJ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인간이 두려움 없이 환경을 조작했을 때 그 피해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인 것이다.

▽CJD와 vCJD〓CJD는 주로 50, 60대에 증세가 나타나는데 심한 우울증으로 행동이 느려지고 기억력이 가물가물해지다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고 팔다리가 마비돼 숨진다.

반면 vCJD는 증세가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특징. 아직 사람끼리 신체적 접촉이나 성관계 수혈 등으로 이들 병에 걸렸다는 보고는 없다.

다만 이들 병에 걸린 환자를 검사하면서 사용한 전극을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거나 뇌경막을 이식할 때 감염 우려가 있다. 현재 치료법은 전혀 없다.

가톨릭대의대 신경과 김영인교수는 “국내에서 vCDJ와 유사한 사례가 2, 3건 보고됐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당장은 프리온 질병에 걸린 소의 장기나 녹용, 동물 가공식품 등을 먹지 않고 축산농이 동물사료를 쓰지 않는 것 외에 특별한 예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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