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33쪽 7000원 길벗어린이
요즘 서점에 나가보면 많은 출판사가 새로 어린이 책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반가운 일이지만 그들이 내는 많은 책이 고만 고만한 번역물이어서 식상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 창작 그림책으로 참 반갑다.
달빛이 차가운 어느 겨울밤에 커다란 황소 아저씨가 작은 생쥐와 나누는 이 이야기의 원작은, 읽을 때마다 겨울 아랫목에 시린 두 발을 녹이는 듯한 정겨움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네 동생의 먹을거리를 책임진 생쥐의 처지는 겨울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만큼 시리다. 먹을 것을 찾아 할 수 없이 온 곳이 황소의 구유. 생쥐의 눈에 황소는 산만큼 크고 무섭다. 하지만 황소 아저씨는 생쥐에게 든든한 언덕이 된다. 밥을 매개로 한 푸근한 만남. 마지막에황소 아저씨에게 이리 저리 기대어 쌔근쌔근 잠든 어린 생쥐들의 모습은 어떤 상황에서든 엄마품에서는 편안해지는 우리 아이들 같아 절로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그림 작가는 이 책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참 많이 고심한 것 같다. 겨울 새벽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회푸른 빛의 전체 색조는 마치 우리가 어느 겨울 밤 외양간을 몰래 들여다 보는 듯이 비밀스럽다. 황소 아저씨에게 어울림 직한 투박한 질감, 이에 대비되는 생쥐의 여리고 귀여운 선. 정말 새끼줄 하나를 집어낼 수 있을 것같은 입체감. 이미 작가가 ‘까막 나라에서 온 삽살이’에서 보여준, 부조를 만들어 천을 덮은 다음 채색하는 기법이 한층 생동감 있게 다가선다.
또 하나 이 그림책의 재미는 다양한 황소 아저씨의 표정이다. 누구나 사람은 그림 속에 자신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황소 아저씨의 표정이 그림 작가의 얼굴은 아닐까?
늘 말하지만 그림책은 읽어주는 책이다. 그래야 아이들이 그림이 주는 맛을 놓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엄마와 아이 모두가 황소 아저씨처럼 든든한 언덕을 가진, 배불리 먹고 따스한 아랫목에 누운 듯한, 넉넉함과 푸근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유아 및 초등학교 저학년용.
김혜원(주부·37·서울 강남구 수서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