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여행을 하거나 연구를 위해 단기 체류하다 보면 다시 만난 옛 친구나 새로 사귀게 된 지인(知人)에게서 이런 저런 편의를 제공받는 일이 생긴다. 귀국해서 이들에게 보답의 뜻으로 한국의 정감이 우러나는 책을 보내는 것은 큰 기쁨이다. 신경숙씨의 수필집 ‘아름다운 그늘’은 농촌의 산과 들, 동식물, 풀과 곡식, 그리고 손때 묻은 모든 일상적 물건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간절한 애정이 그 특유의 화법으로 소박하게 표현되고 있어 우리 영혼의 고향인 농촌을 아늑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해외동포에게는 최상의 선물이라고 자신한다.
최근 고국을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과 나누어 읽기 좋은 수필집 두 권을 발견했다. 서강대 장영희 교수의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샘터사·2000년 9월)은 저자의 맑은 심성이 곳곳에 넘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찌들고 일그러진 마음을 맑은 물에 헹군 듯,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장애인으로서 취학과 진학 때 마다 괴로움과 설움을 겪어야 했고, 하루하루의 생활이 고통이며 투쟁인 그가 그 고통과 수모를 모두 삭여서 그토록 맑고 밝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면서 위안이 되기도 한다.
국내 어느 대학 박사과정에 응시했다가 면접고사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학부 학생도 장애인은 받지 않아요. 박사과정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라는 냉혹한 선언을 듣고, 차분하게 “그런 규정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인사하고 나와서는 영화 ‘킹콩’을 보러가, 그 거대한 고릴라가 포획되기 전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말할 수 없이 슬픈 눈 때문에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이남호 고려대 교수의 산문집 ‘혼자만의 시간’(마음산책·2000년 12월)은 조용하고 부드럽고 한가롭기까지 한 책이다. 우리 세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지만 단죄하는 어조가 아니고 조금은 슬픈, 그러나 참음의 미덕을 체득한 사람의 목소리를 띄고 있다.
“동강이 아름답다, 깨끗하다니까 너도나도 가서 보고 래프팅을 하면 자연히 오염을 보태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동강을 살리기 위해 우리는 동강에 가지 말자”라고 그는 말한다. 접근하지 않는 것으로 애정과 존중을 표현할줄 아는 사람답게, 그의 글은 초조함과 조급함의 어리석음과 비생산성을 깨닫게 해 준다.
맑고 깨끗한 글에 마음을 씻고 번잡함을 떨어내는 것은 정신적 소생이다. 이런 글들을 벗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살벌한 삶 속의 작은 행운이다.(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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