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기자의클래식 깊이듣기]연주가의 '자기다움'에 대해

  • 입력 2001년 2월 4일 18시 34분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 총장께.

얼마전 새로 나온 총장님의 새 산문집 ‘술과 아내 그리고 예술’을 읽어보았습니다. 총장님이 저를 항상 탄복하게 하는 점은 지칠 줄 모르는 ‘생각쟁이’라는 점입니다. 제게 생각쟁이란, 생각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생각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총장님은 음악의 생성과 재현, 사회적 실천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문을 던져오셨습니다.

이번 책은 제목이 말해주듯 총장님의 집안 이야기며 이미 제가 크게 당한 바 있는 자신의 주량 얘기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책 역시 생각쟁이로서 총장님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 보였습니다.

특히 제가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양심적인 연주가’라고 이름붙은 부분입니다. 총장님께서는 “대중가수의 쇼에는 사람이 모인다. 순수음악을 연주하는 국내인의 연주회장에는 왜 사람이 모이지 않는가”라고 따끔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아마도 연주가들 스스로 생각하는 대답과 사뭇 다르리라 봅니다.

“이미자를 예로 들면 그는 ‘이미자다움’이라는 일종의 표현을 자기 식으로 그리고 스스로 창조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표현 목적을 성취하는 데에 필요한 수단을 마련해놓고 있다. 그런데 국내 순수음악 연주가의 상당수는 자기다움이란 것을 갖고 있지 않다.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자기다움을 창출하는 수단의 동원 문제에서 완벽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연주가들이 경악할만도 합니다. 그러면 총장님은 어떤 해법을 갖고 계신 걸까요.

저는 그렇게 말해왔습니다. “예전에는 한 도시에서 1, 2등을 하면 연주가로서의 존재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순회연주와 오디오가 발달한 지금은 지구촌에서 톱클래스가 아니면 존재의 이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라구요.

그런데 총장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저는 제 생각이 부족했음을 인정해야만 하게 됐습니다. 총장님은 “자기다움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완벽을 기하지 못했을 때는 스스로를 추호도 용납하지 말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자기다움’을 찾는다면 1등이 아니라도 연주가로서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저는 그동안 그것을 잊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 땅의 많은 연주가들이, 전부는 힘들지라도, 총장님의 격려대로 ‘자기다움’을 무대위에서 구현하고 거기에 적합한 수단까지 갖추게 되기를 기대해 보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총장님이 쓰신 글의 제목을 다시 상기해 봅니다. ‘양심적인 연주가’ 라는.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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