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밤, 미경이의 제안으로 함께 여유로이 홍차를 즐기고 있던 승아와 남호의 찻잔에서 조그만 인형처럼 생긴 생물체가 튀어나온다. 기겁을 하는 세 사람에게 자신들을 홍차 나라의 왕자라고 소개한 아삼과 얼그레이가 각각 3가지 소원을 이루어줄 때까지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매지컬 학원 로망 <홍차왕자>의 막이 오른다.
섬기는 주인 이외의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미니 사이즈를 유지하며 3가지 소원을 이루어 주는 이들은 어쩌다 보니 홍차 동호회와 학교 생활에 점점 깊숙히 개입하게 되면서 떠들썩한 고등학교 생활을 즐긴다. 여전히 신입부원이 없는 홍차 동호회의 부원 모으기 시도는 계속되고 아삼과 얼그레이도 성심껏 돕는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추억이 많아질수록 승아는 언젠가는 헤어져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 홍차왕자의 존재에 아쉬움과 불안을 느끼고 아삼을 향한 묘한 감정을 깨닫게 되는데 ... 과연 홍차왕자들과의 이별의 시간은 언제가 될까 ?
이 만화는 마치 알라딘의 요술 램프 같은 설정을 지니고 있다. 밤 12시 보름달이 비치는 홍차 찻잔을 은스푼으로 한 번 저으면 홍차왕자가 나타나 3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가상의 영국 민화가 바로 그것. 초미니 사이즈의 홍차 왕자 아삼과 얼그레이는 만화에서 주로 개그컷에 등장하던 SD캐릭터를 작품의 활력소로 효과적으로 이용한 좋은 예다. 행동 하나 표정 하나가 말 그대로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워서 독자는 시종일관 눈을 뗄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이 두 왕자님의 또 다른 매력은 이들이 장난감처럼 귀엽기만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실제 인물 크기로 커질 수도 있으며, 변신했을 때 엄청나게 멋지다는 점이다. 왕자님처럼 멋진 외모의 남자 주인공은 별다를 것도 없는 순정 만화 단골 캐릭터지만, 실제 신분이 왕자인 자들이 현실 세계의 고등학교에 출현한 점이 기묘한 설렘을 자아낸다고 할까.
흠이라면 작품이 진행될수록 아삼과 얼그레이 이외의 홍차왕자, 공주를 비롯한 수많은 캐릭터가 속속 등장하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스토리 곳곳이 억지스럽고 감정 연출도 과잉이라 아쉽다.
<홍차왕자>는 돌이킬 수 없는 추억에 대한 그리움을 각자의 가슴에 안고 있는 이들이 서로 만나고 마침내 이해하게되는, 현재가 또 다른 추억이 되어나가는 과정을 시종 감성 풍부한 따뜻한 터치로 그려나가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 고리이며 갈등을 해소하고 눈물을 미소로 바꾸는 따스하고 향기로운 홍차의 존재는 보는 이마저도 포근히 감싸준다.
덤으로 국내에는 아직 대중화되지 못한 홍차에 관한 다양한 상식과 맛있게 홍차 끓이는 방법 등도 배울 수 있다. 특히 각 캐릭터가 이름을 딴 홍차를 하나하나 마시는 걸 보면 홍차의 맛과 향기가 캐릭터의 성격과 어딘가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조금은 낯선 홍차 한 잔을 마주하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동화 같은 만화 <홍차왕자>를 펼치는 순간 무미건조한 일상의 조그만 행복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지혜 <동아닷컴 객원기자> lemonjam@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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