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푸드 컨설턴트 신상순씨 '작품' 50곳 인기폭발

  • 입력 2001년 2월 9일 18시 27분


바닥에 조그마한 수족관을 만들어 발 밑으로 물고기가 지나가는 중국집 ‘치나바’, 500가지에 달하는 인도식 차를 파는 티살롱 ‘살드마티네’, 이탈리아 시골집처럼 디자인해 놓은 이탈리아 식당 ‘안나뷔니’, 물이 최고의 양념이자 소스라는 개념에서 만든 ‘물바’….

1∼2년 전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일대에 등장해 적지 않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신개념 레스토랑 혹은 바(Bar)들. ‘문화를 판다’는 작전 아래 독특한 인테리어를 과시했던 곳들이다. 배후에는 언제나 ‘레스토랑의 연금술사’ ‘청담동 신의 손’이라 불리는 신상순씨(41·ODS코리아 대표)가 있었다.

“지금도 다음달에 문을 열 3, 4개의 레스토랑을 컨설팅하고 있습니다. 개조에 관한 컨설팅을 해준 곳, 기획단계에서 프로듀스해 준 곳, 직영하는 곳 등을 합치면 서울 강남 일대에만 30여개의 업소가 제 손을 거쳤습니다.”

케이스갤러리 국제갤러리 아트선재센터 등 유명 미술관내 고급 음식점들을 도맡아 기획했거나 기획 중이다. 강남북을 통틀어 50여개에 이른다. 젊은층에게 인지도가 높은 유명식당 중 상당수가 신씨를 거쳐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틈틈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대학가근처의 소규모 프랑스 식당 10여개를 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신씨의 식당 철학은 의외로 간단하다. 식당의 컨셉트에 맞는 주제를 정하고 그대로 ‘디자인’을 하는 것이 첫 번째. 밥만 먹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의자나 방석, 하다 못해 수저라도 고전적인 ‘유럽스타일’이 전반적인 아우트라인을 이루는 경우가 많긴 한데 이 역시 ‘예술적 교감’에는 유럽식이 제격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 다음은 ‘음식의 소재’에 굉장한 집착을 보인다. “조미료를 비롯한 테크닉의 시대는 갔다. 자연 재료를 숭배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는 게 신씨의 진단이다. 유기농산물 자연산 등 닥치는 대로 ‘최고급’만을 섭렵한다.

덕분에 파급 효과도 컸다. ‘프랑스형 중식당’을 표방한 서울 청담동 ‘마리’가 흥행에 성공하자 두세 달 사이에 비슷한 형식의 중식당이 청담동에 36개나 생겼을 정도. 10평 남짓한 조그만 공간이었지만 종업원들에게 중국 의상을 입히고 골동품인 중국식 나무 의자와 그림 등 소품을 전진배치한 게 효험을 본 것이다.

압구정동의 정통 인도식당 ‘강가’나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내 ‘달’의 경우 ‘커리’는 모르고 ‘카레’만 알던 젊은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와 ‘인도식당 붐’조성에 한몫을 했다. ‘한식의 세계화’를 목표로 했던 청담동 ‘쉐봉’은 매생이탕 뽕닭요리 등 서양입맛에 잘 맞지만 메뉴의 대중화가 덜되었던 탓에 사장될 뻔했던 한국 요리들을 잘 살렸다는 평을 듣는다.

신씨는 대구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구와자와 디자인 스쿨을 졸업하고 ‘빅3’컨설팅 회사 중 하나인 ODS에 아르바이트 사원으로 들어갔다.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정식사원으로 발령을 받았고 2년 뒤에는 한국이라는 국적과 25세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이사’로 발돋움했다. 워낙 이례적인 일이라 일본에서는 ‘사장이 한국에서 몰래 낳은 아들’이라는 헛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88년 한국 지사장으로 부임해 농심 고려당 해태 등 요식업계의 컨설팅을 주로 맡아 10여년간 시장조사를 마쳤으며, 98년경부터 ‘한국에도 여건이 성숙했다’고 판단해 본격적인 개별식당 경영과 컨설팅에 나서기 시작했다.

신씨의 실험은 계속된다. 3월경에는 서울 압구정역 부근에 ‘빵집┼반찬가게┼레스토랑’으로 이루어진 100평 규모의 가게를 열 예정이다. 원하는 수량만큼 빵을 그 자리에서 굽고 구입한 반찬들은 식사 메뉴에 자신이 섞어 먹을 수 있도록 한다는 기획이다. 인테리어숍에서 음식과 패션상품을 파는, 의식주가 합쳐진 종합적인 ‘라이프스타일’ 매장을 서울 한복판에 꾸미는 게 신씨의 2002년 계획이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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