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표류하는 영유아교육 6]끝없는 논란 '보육 vs 교육'

  • 입력 2001년 2월 11일 19시 13분


▼'공교육 확대' 말만 해놓고 4년째 '밥그룻싸움'만▼

영유아들의 조기사교육 열풍,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데가 없는 맞벌이 부부들의 조바심, 어디서도 도움의 손길을 기대할 수 없는 사고무친한 아이들의 적막감.

이런 현상을 두고 유아교육개혁을 얘기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가망이 없는 사회다. 그러나 그런 개혁을 얘기하면서도 ‘비개혁적 논쟁’으로 날을 지새는 사회는 더욱 비관적인 사회인지도 모른다.

현 정부출범 때부터 100대 개혁과제의 하나로 꼽혀 온 이 문제는 안타깝게도 지난 3년간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97년 유아교육법안 발의로부터 따지면 무려 4년이다. 417만명의 0∼5세 아이들, 800여만명의 그 부모들, 나아가 온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큰 개혁’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특히 유아학교(3∼5세를 대상으로 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통합 형태) 설립을 둘러싸고 관련 학회와 단체, 그리고 교육인적자원부와 보건복지부 사이에 한치의 양보도 없이 계속된 갈등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이들이 진정 우리 아이들의 안녕과 발달을 위한 상대방의 몫과 협력을 전제로 논전을 펴고 있는지 회의하는 시각이 급격히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김대중대통령의 ‘취학전 1년 아동들에 대한 공교육 추진’ 언급과 함께 다시 수면위로 부상한 유아교육법 논쟁을 두 주역을 통해 검증한다. 여기서 본보가 설정한 양보할 수 없는 논점은 ‘유아교육개혁은 이와 관련된 어른들이 아니라 한시 바삐 그 지원을 받아야 할 아이들의 절박한 외침’이라는 점이다.

▼찬성/임재택 "부모들 부담 덜어"▼

유치원은 전업주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은 취업여성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도입됐다. 그러나 오늘날 이 두 시설은 사실상 차이가 없다. 일하는 엄마들이 크게 늘었고, 두 시설 모두 교육과 보호 두 기능을 동시에 갖도록 요구받아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슷하게 된 두 시설을 교육인적자원부와 보건복지부라는 2개의 정부부처가 관리하면서 많은 문제가 생겼다.

두 시설의 주대상인 3∼5세 유아의 수를 고려하지 않고 시설을 허가제에서 인가(유치원) 또는 신고(어린이집)제도로 전환, 난립을 부채질하면서 두 시설 사이의 경쟁은 극에 이르렀다.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고 조기 영어교육 등 온갖 사교육이 횡행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더구나 영유아 관련시설들은 대부분 사립이다. 때문에 취학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으로 고통받는다. ‘영아 보육’과 ‘유아 교육’에 대한 정부 지원이 극히 적고 거의 모든 책임이 시장에 맡겨지다 보니 학부모들은 연간 5조7000억원의 사교육비를 부담하게 된 것이다.

유아교육법안 마련 등 정부의 움직임은 이를 국가의 공교육체제로 편입하려는 것이다. 3∼5세 유아를 정부 2개 부처에서 중복 관리하는 현 2원체제를 0∼2세는 보건복지부 관할의 ‘영아보육시설’로, 3∼5세는 교육부 관할의 ‘유아학교’로 구분하고 양자 모두의 공교육화를 실현하는 게 핵심이다. 2원화에 따른 정책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무상교육으로 전환하면 현행 ‘교육’과 ‘보육’의 혼란은 상당히 가라앉을 것이다.

일본 미국 등 일부 나라를 제외한 세계 90%의 나라가 이같은 체제를 운용한다.

이처럼 유아학교는 조기교육열과 시설간 유치경쟁으로 황폐해진 유아교육을 정상화하고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을 뿐더러 학부모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 법안이 몇몇 이익단체의 반발로 제정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임재택(부산대 교수 ·교육인적자원부 유아교육발전추진위원장)

▼반대/표갑수 "다양한 교육 저해"▼

교육인적자원부와 일부 유아교육계가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유아교육법을 다시 제정해 유아 공교육화를 위한 유아학교를 설립하자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3∼5세 아이들을 유아학교에서 종일 교육시키는 제도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이 법안은 기존 유치원들의 부실화와 이로 인한 보육시설화 경향을 합리화하려는 ‘유치원 활성화 정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유치원은 인재양성을 위한 조기교육시설이다. 반면 보육시설은 부모의 취업이나 질병, 빈곤 등으로 자녀를 돌볼 수 없는 가정을 지원하는 총체적인 사회복지기능을 제공한다. 목적과 기능이 다른 두 시설을 통합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사회양육기능의 보장·강화차원에서 보육시설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일본에서는 1926년 이래 30년간 보육시설과 유치원 일원화를 위한 논의가 있었으나 실패했다.

아동의 연령을 1살 내려 국민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면 미국, 호주 등처럼 초등학교에 유아학년을 두면 된다.

이 법안은 또 역기능이 많다. 우선 보육시설과 유치원을 통합, 획일화하면 부모의 다양한 양육방식과 소비자의 선택권이 무시된다. 또 유아학교에서 종일제(8시간)나 상시운영을 한다고 하나 취업여성의 요구나 교사의 근무여건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 유아학교론자들이 주장하는 ‘행정의 효율성’도 마찬가지다. 유아학교로 편입되지 않은 유치원과 보육시설은 여전히 이중관리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역기능들로 인해 유아교육관련 단체인 한국교총과 국·공립 유치원연합회도 이 법안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대안은 △초등학교에 유아학년제도를 두어 유아 공교육 체제를 이루는 안(여론조사에서 유아학년은 54.6%, 유아학교는 18.5%가 지지) △유치원과 보육시설 각각의 기능을 강화해 현재처럼 이원적으로 유지하는 안 등이다.

유아교육법을 제정해 여기에 보육의 개념까지 포함한다는 것은 옥상옥(屋上屋)일 뿐이다.

표갑수(청주대 교수 ·한국영유아보육학회장)

▼논쟁을 보고 …▼

유아교육법안, 그 중에서도 유아학교를 둘러싼 논쟁은 아이나 부모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다분히 ‘공급자 논리’에 치우져 전개된 것으로 보인다. 정작 아이와 부모의 희망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실태 파악이 전제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굳이 논의를 계속하려면 유아학계와 보육학계 모두 ‘현실의 요구’와 ‘합리적 논거’를 바탕으로 논점을 재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양측 모두에 주장은 있되 상대방 논점에 정확히 대응하는 논리적 반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그동안 갈등을 조장해 온 교육인적자원부와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의 자세에 대한 비판도 대단히 크다. 정말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면 양 부처가 대승적으로 협력의 통로를 마련하고 이를 기반으로 통일된 정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양 부처 관계자들은 “부처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많이 받은 게 사실”이라며 “유아교육법안을 재추진한다면 정부 단일안으로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정말 그렇게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나도 할 말 있다"▼

유아교육법안 논쟁은 많은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논쟁의 중심에 서 있지는 않으나 ‘할 말’은 많은 관련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어린이집 원장 K씨(여·40)〓독일은 80년대 유아교육개혁 논의를 하면서 아이들 목소리까지 들었다. 그리고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게 보육이냐, 교육이냐. 쓸데 없는 논쟁을 이제 그쳤으면 좋겠다. 큰 테두리에서 이 법안의 방향은 옳다.

▽A대 유아교육과 Y교수〓정부는 유아교육법안의 갈등 양상이 의약분업에 뒤이은 또하나의 ‘국론 분열’로 비칠까봐 겁내고 있다. 차라리 학부모 여론조사로 결정하자. 결론없는 소모전이 지겹지도 않나.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허선(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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