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성당 고대 신전의 공간감 연출
유리와 철골로 이뤄진 현대적 감각의 서울 로댕갤러리가 시골 초가집의 토담벽에서나 볼 수 있는 흙으로 온통 칠해져 흙 세상으로 변한다.
도예작가인 원경환 홍익대 교수(47)가 16일부터 4월8일까지 52일간(월요일 휴관) 서울 태평로 2가 로댕갤러리에서 갖는 ‘흙의 인상전’은 원초적 소재인 흙의 형태와 질감을 통해 원시에 가까우면서도 현대적인 미감을 드러내는 전시회.
개막을 앞두고 찾아간 현장은 거대한 유리창 전면(9.5×17m)에 흙을 발라 흙이 마르면서 갈라지는 틈 사이로 자연스럽게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마치 중세 성당과 같은 사색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 옆 80평의 공간에는 고대의 토템 폴, 혹은 신전(神殿)의 열주(列柱)를 연상시키는 18개의 사각형 기둥(5×0.6×0.6m)이 세워져 있으며 표면의 흙이 마르면서 고대 동굴 속 같은 공간감이 연출되고 있다.
원 교수는 이같은 대규모의 흙 설치작업을 위해 3톤의 점토를 날라왔다. 현장에서의 작업은 그의 지휘로 100여명이 동원돼 나흘간 일해 마무리됐다.
89년 그가 일본 도쿄 ‘엑서비션 스페이스(Exhibition Space)’에서 호평받았던 아치형 유리창 흙 설치작업 이후 12년만에 갖는 최대 규모의 흙 설치작업이다. 그는 “원료로서 흙의 가공되지 않은 본질적 표정과 물성을 탐구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그윽한 검은 빛깔의 도예 소품이나 거기에 철이나 나무 등을 결합해 만든 작품 20여점도 함께 선보인다.
검은 빛깔의 도예품은 가마에서 흙을 구울 때 연료인 장작에서 생기는 그을음을 빠져 나가지 못하게 막고 흙에 흡착시킴으로써 검은 빛을 띠게 하는 흑도소성(黑陶燒成)의 기법으로 만들어진다. 토기와 기와 등을 만들 때 흔히 쓰는 원시적 방법.
이 기법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유약을 바른 도자기와 달리 흙의 느낌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 그는 “흙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흙의 색깔을 바꾸는 묘미가 있다”고 말한다.
검정색 도예품에 철이나 나무를 결합해 만든 ‘토생금(土生金)’ ‘목극토(木克土)’ 등의 소품들은 동양의 오행사상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흙(土)에 물(水)을 이겨 빚어낸 형상을 불(火)로 구운 뒤 나무(木)나 쇠붙이(金)를 결합한 이 작품들은 오행의 다섯 가지 재료를 현대미술의 조형으로 담아낸 것”이라고 설명한다.
전시기간 중 매일 오후 1, 3시 두 차례 전시설명회가 열리며 ‘큐레이터, 작가와의 대화’가 24일 오후 2시에 열린다. 22일부터 4월5일까지 격주 목요일 오후 7시에는 음악평론가 장일범씨가 기획하는 음악회가 개최된다. 02―2259―7781, 2
<윤정국기자>jk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