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영어경시학원. 어제(14일) 있었던 ‘대학수시모집확대’ 발표가 긴장감을 더해 주었기 때문이었을까. 폭설이 몰아친 날이었음에도 서울 시내 각지에서 몰려온 30여명의 고등학생이 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분위기는 일반 보습학원과 다를 바 없지만 이곳의 수강생들이 대부분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가량 해외체류 경험이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강사도 미국 유학생 출신을 쓰고 학생들도 영어로 듣는 걸 편하게 생각하는 탓에 문법 설명에서도 조사를 빼면 영어 구사의 비율이 높다. 강의는 대부분 토플 토익 대비를 위한 원서, 미국 대학원 입시 시험문제인 ‘GRE’교재 중 일부를 복사해 사용한다.
최근 많은 대학에서 기준을 강화해 ‘해외 거주 3년 이상’, ‘고1과정까지 이수’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학생들에게만 특례입학 자격을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조건에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외국거주 경험이 있는 학생들, 아니면 다른 과목에 비해 영어 실력이 뛰어난 일반 학생들이 ‘영어 특기자전형’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특례입학전문학원’이었던 곳도 경시대회 수요자 층이 늘어나면서 ‘경시학원’ 등의 이름으로 간판이 바뀌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신사동 일대에만 10여곳의 크고 작은 학원들이 들어서 있다. 강남의 대형 입시학원들도 추세에 맞춰 올해부터 1∼2개반씩 ‘영어특기자반’을 운영하고 있다. 경시대회의 경우 고난이도의 독해 영작 회화 듣기가 전부 평가대상이어서 대학 영어 이상의 수준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별 수시모집 정원이 지난해에 비해 10배나 확대된 10만7821명으로 확정되고, 이중 적지 않은 수가 영어경시대회 입상자들이나 토익 토플시험의 고득점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확률이 높다. 다른 제2외국어나 이과 과목 특기생에 비해 ‘영어특기생’은 문과 이과 구별없이 진학의 문이 넓어 상대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이 많다. 서울대 입시에서도 영향력이 높아진 학생부의 ‘비교과영역’의 경시대회 가산점이 명기돼 있다. 일단 공신력 있는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으면 학생부의 비교과영역이나 면접고사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학생들의 ‘믿음’도 한몫한다. ‘난세’일수록 챙길 수 있는 것은 확실히 챙겨 보자는 심산이다.
반 석차가 상위권인 박형원군(18·상문고3)은 “여러 과목을 전부 마스터해도 난이도와 운에 따라 성적이 나빠질 수 있는 수능에 비해선 공부하기가 편하다. 혹시 수시전형에서 떨어지더라도 수준 높은 영어 공부를 한 것으로 족하다”고 말했다. 또 중3때까지 5년간 독일 체류 경험이 있는 곽민아양(18·이화여고3)은 “중위권 내신성적과 수능으로는 다소 힘들 것으로 판단돼 비교적 자신있다고 생각한 영어 과목에 많은 투자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