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馴馭(순어)

  • 입력 2001년 2월 20일 18시 35분


모든 家畜(가축)은 본디 野生이었다. 그래서 산과 들에서 제멋대로 뛰놀고 먹고, 交尾(교미)하고, 새끼 낳고…. 인간이 이 놈을 길들여 기름으로써 家畜으로 만들었지만 인류의 출현을 考慮(고려)한다면 그리 오랜 옛날의 일이 아니다.

중국에서 家畜化가 먼저 된 것은 놀랍게도 소보다는 말이었다. 주로 교통수단이나 戰爭用(전쟁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아주 오랜 옛날부터 매우 중시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西晉(서진)의 陳壽(진수)가 쓴 三國志(삼국지) 魏志(위지) 東夷傳(동이전)에 의하면 馬韓은 ‘牛馬를 탈 줄도 모르고 지치면 그냥 죽게 내버려 두었으며’, 辰韓(진한)은 ‘牛馬를 탔다’라고 記錄하고 있어 당시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牛馬를 수송수단으로나 이용할 줄 알았지 耕作(경작)에 이용할 줄은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뒤 출현한 우리의 三國史記(삼국사기)를 보아도 소나 말은 탈 것으로만 사용했을 뿐 新羅(신라) 제22代 智證王(지증왕) 3년(502)에 와서야 비로소 牛耕法(우경법·소를 이용한 밭갈이)이 있었다니 농사용으로 사용한 것은 불과 1500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소든 말이든 野生動物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훈련과정이 필요했다. 野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쉬이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漢字에도 ‘동물을 길들인다’는 뜻을 가진 글자가 있는데 馬변을 사용하여 ‘馴’(순)이라고 한다. 그것은 가축 중 말이 제일 먼저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馴鹿(순록)이라는 말이 있다. 야생 사슴을 길들여 ‘家畜化시킨 사슴’이란 뜻이다.

사실 지금도 몽골이나 미국, 남미 등에 가보면 野生馬를 잡아다 길들이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으며 태국이나 스리랑카 같은 나라에서는 야생코끼리도 길들여 家畜化하는데 그것을 馴象(순상)이라고 한다.

고분고분 말을 잘 듣게 길들이고 나면 이제는 부려야 한다. 자연히 야생동물을 부리는 것도 말(馬)부터 시작했으므로 ‘부리다’는 뜻을 가진 글자도 馬변을 붙여 ‘馭’(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고통의 연속이다. 코끼리의 경우, 한 달 정도 가두어 놓고 온갖 고통을 가해 말을 듣지 않으면 안되도록 길들인 다음 노동력으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野性을 상실하게 되고 심하면 미치거나 죽기도 한다. 그래서 한자어 馴馭나 우리말의 ‘길들이기’는 섬뜩한 느낌까지 주게 되는 것이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e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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